# 10/22 숫자 1에서 변수 N이 되기까지

By [Abilifi](https://paragraph.com/@abilifi) · 202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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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나서 publish 하는데 지갑 오류로 다시 쓰고있어서 처음의 감정을 되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4일전 일본에서 한국에 복귀한 뒤, 생각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한가할 줄 알았는데, 화요일 저녁에 복귀한 후의 바로 저녁에 미팅을 했고, 수많은 운동 일정과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생각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회사 동료가 집에만 있지 말라고 했는데, 오히려 집에만 있을 시간이 너무 없을 정도로 바빴다. 그러나 그렇다고 공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자주 공허함을 느낀다. 이 공허함을 타파하기 위해 나는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을 많이 가지기도 했다. 7월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일본에 있을때, 3일차 새벽에 Y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벽 5시쯤 되었는데, 평소라면 받지 않았을 테지만, 그날은 일본에 여행을 가있는 터라 노트북이 근처에 있었고, 소리가 켜져있어서 카카오톡의 보이스톡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래서 자던 와중에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Y가 지금 어디냐고 했고, 나는 일본이라고 했다. 그는 놀랐다. 그리고 약간의 잡담을 하다가, 한국이면 내일 나를 보러 오겠다고 말하려고 했다는 그의 말을 들었다. 반가웠다. 그의 관심아닌 관심. 그리고 그가 그의 친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술을 마신 것을 알았다. 그래도 나는 그의 관심이 좋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를 우리는 했다. 나는 기분좋게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복귀한 뒤, 나는 너른하게 그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나 몇일이 지나도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몇번이나 그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했지만, 답장이 아주 아주 뒤늦게 오거나, 오늘은 낮잠을 자야해서 올수 없다는 그의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아, 일본에서 받은 전화는 그의 술김에 생긴 아주 사소한 관심이라는 것을.

나는 태연하게 답변을 하고, 걸어가면서 그의 연락처를 차단했다가 풀었다. 그에게 티를 내지 않고 내가 그를 멀리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에게 적어도 먼저 연락하는 일을 없애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었다.

홧김에 였는지를 고민해본다면 전혀 홧김이 아니었다. 과거의 나라면 그에게 서운한 감정을 쏟아낸 뒤, 벽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혼자만의 감정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런데 항상 이럴때마다 선생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모든 결정을 유보하세요. 라는 의사선생님의 말. 선생님의 의도와는 다를 순 있지만, 나에게는 모든 행동을 홧김에 하지 마세요. 라는 기조로 자리잡았다. 꽤나 최근부터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Y와 연락할 때마다 그가 얼마나 답장을 느리게 하는지,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등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감정을 느낄때마다 애써 무언가 결정하지 않으려했다. 의사선생님의 말이 떠오르기도했고, 무언가 인정하기 싫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인정하기로 했다. 그를 보내줘야함을. 더이상 나와의 관계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인정하기로 했다. 아주 천천히.

그를 만났던 한달 전에 그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다. 나는 섣불리 그 꿈을 도왔다. 그 당시엔 그의 꿈을 이룬 다음이 궁금하기도 했고, 어떤 모습일지 보고싶었다. 그리고 나에겐 수많은 것들로 그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었으니 나는 홧김에 그를 도왔다. 그리고 그는 그 꿈을 이루고 살고 있다.

아주 약간 후회를 한다. 그는 그 꿈을 이룬 뒤, 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아주 작은 인간으로써의 애정도 사라져버린 듯 했다. 사라졌다기 보다는, 그의 마음에 공간이 더이상 여유롭지 않아 내가 차지할 공간이 없어진 것과 같았다.

나는 여전히 그때와 같이 아프고, 똑같은데, 꿈을 이룬 그는 더이상 그때의 그가 아니었다.

나는 3일전 밤에, 크게 아팠다. 아프다고 해봤자 그저 공황발작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가장 힘든 병과 같다. 약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아프다고, 힘들다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필요시 약을 급하게 꺼내먹고도 괜찮아 지지 않아서 한알을 더 먹었다.

아팠다. 눈물이 났다. 그런데 아프다고 말할 곳이 없었다. 예전에는 그에게 아프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더이상 말할 수가 없다. 그를 귀찮게 할까봐. 나의 친구들에게는 더더욱이 말할 수 없다. 친구들의 마음속에 괜한 씨앗을 심을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공황발작이 이래서 싫었다. 아픈데 아프다고 말할 수 없고, 그저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하는 고통의 시간.

그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길을 지나가는 아무개가 아니라 Y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를 이제 Y 그 자체에서 나의 주변인으로 변경하려 노력할 것 같다. 그에게 더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 나는 기대했다가 그 기대를 잃을 때 가장 아팠다. 실망이라는 감정이 나를 공황발작 상태에 빠지게 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아플텐데, 그는 꿈을 이룬 채 살 것이다. 그와 나는 여기서 이제 이별해야한다. 그에게 이별하자고 말하지는 않을 것 이다. 그에게는 이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롯이 그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가졌던 나만이 견뎌내야하는 이별.

나는 얼마전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의 견고한 세상을 깨는 건 너무 아프지만, 깨는 순간을 일으킨 사람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견고한 세상을 깨는 사람들은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다. 우리는 학창시절의 수학시간에 N이라는 변수에 대해서 배운다. N은 어떠한 숫자도 될 수 있는 그룹이다. 그는 나에게 원래 1이라는 대명사였다. 그는 내 세상을 많이 깼기 때문에, 나에게 그는 1이었다.

그런데 오늘부로 그를 다시 N으로 보내주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언제나 숫자 1이 아니라 N이 었던 것처럼, 우리는 과거의 서로를 위한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고통은 나만이 겪으면 된다.

최근 나는 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파괴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한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정의할 것이다. “남에게 기대하는 것, 그리고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

아니, 어쩌면 아닐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그가 내 세상을 깨주어 나는 그에게 많은 기대를 했지만, 이제 다시 아프고 싶지않다.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혼자로 살아가야한다. 아프면 견디기 어렵다. 매일 매일 약을 먹고 건강해지려 노력을 해야만 겨우 제자리 걸음을 할 수 있는 삶.

Y, 나의 세계를 많이 깨주어서 고마웠어. 그동안 나의 세상이 잠시 말랑말랑 해질뻔 했어. 근데 오늘은 인정하고 이제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으려고 해. 너의 꿈을 이루어 주어서 너무 행복했어.

앞으로도 더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라. 나도 이제 아프지 않고 더 건강해질거야.

남에게 기대하고 실망하는 나에게도, 오늘 이별의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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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ly published on [Abilifi](https://paragraph.com/@abilifi/10-22-1-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