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4 이게 끝이아니라면 

By [Abilifi](https://paragraph.com/@abilifi) · 202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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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트리거가 사라지고 난 뒤,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했고, 후회했다.

참을수 없는 죄책감이 올라온다. 최근엔 거의 술을 마시지않아 잘 누르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울컥울컥 올라오는 삶을 끝내고 싶은 의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잘 있다가도 불쑥 튀어나오는 후회와 아련한 심장. 술을 마실때에는 이 감정이 더욱 격해지는 것 뿐이었고, 그냥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아 격해지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기분.

모든 것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이 감정을 가진채 살아가고 싶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항상 그랬듯이 난 용기가 부족했고,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항상 다른 방법으로 이 감정을 극복해보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 털어놓자마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감정이 격해졌다. 내 스스로가 병신같다고 했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솔직한 감정으로 나쁜 의도는 없이 아직 밑바닥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스스로를 병신이라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마도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말이 자꾸 떠올라서 눈물이 났다. 이게 밑바닥이 아니라 더한 밑바닥이 있다면, 얼마나 더 힘들어야하지?

지금도 너무너무 힘들어서 최대한 다 끝내버리고 싶은데, 끝낼수가 없어서 얼마나 답답한데, 이보다 더한 밑바닥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견딜수 없는 고통을 맞이해야하는 준비를 하라는 말과 같았다.

이게 바닥이 아니라면, 이보다 더한 바닥이 있다면, 얼만큼 더 힘들어야하는 걸까.

아니면 지금 내가 힘들어하는게 사실은 하나도 안힘든 거였다면,

나는 얼마나 나약해서 이정도로 뿌러져버리려는 걸까.

그런데 어떻게 하겠어.

뿌러져버릴 것 같은데, 여기서 바닥밖에 없다면 난 정말로 뿌러져버릴지도 모르겠는데,

최근 내가 가진 것들을 누구에게 주어야하나 하는 고민을 종종했던 것 같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가만히 잘 있다가도 울컥 울컥 올라오는 감정들의 일환이다.

내가 가진 좋은 옷, 내가 가진 좋은 물건, 내가 가진 돈, 내가 가진 것들을 누군가에게 어떻게 나누어줘야할지.. 내가 없는 곳에서 어떤 생각을 할지.. 내가 없는 곳에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하는 호기심에서 더욱 크게 나온 것 같기도하다. 그런데 호기심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이 나의 힘듦의 끝이 아니라면, 나는 견딜 수 있을까? 뿌러지지 않고 잘, 자랄수 있을까? 아니 조금 뿌러지더라도 자랄수는 있는걸까?

모든 것에서 도망가고 싶다가도, 도망이 실패할 경우에 대한 모든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당장 내일 나에게 의무로 되어있는 것들. 내가 만약 도망을 실패한 다음에 그것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나는 이렇게도 나약한 인간이다. 도망조차 할 수 없는 사람. 그런데 이보다 더한 힘듦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깨달아버렸다.

심장이 너무너무 답답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늘 밤, 자기 전에 먹으라고 할당되어있는 약을 들이키는 것. 그리고 내일 하루를 다시 아무렇지 않게 시작할 수 있도록 잠에 드는 것. 고작 그것 뿐이다. 고작이라기엔 나에겐 너무나도 큰 과제이다. 겁쟁이인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것.

무의식의 세계로 도망치는 것. 그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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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ly published on [Abilifi](https://paragraph.com/@abilifi/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