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8 후퇴하는 진보

By [Abilifi](https://paragraph.com/@abilifi) · 202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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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담배 한대 태우시죠”라고 말하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한테 말한건 아니고 내가 담배를 피고 있는 옆에서 두 아저씨들이 다가오며 한 이야기이다.

왜 어른들은 담배를 “태운다”라고 할까? 나는 저 태운다 라는 단어가 부쩍 어색하다.  
그리고 나서 그럼 뭐라고 해야하지? 했다가 생각해보니 “흡연한다”는 말하기 어려운것 같고, “피운다”정도가 제일 적절한 것 같다.

그런데 아저씨들이 말하는 걸 보면 “태운다”는 뭔가 먹는 느낌이 아니고, “피운다”는 먹는 느낌에 가깝다.담배를 태운다 라고 말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아저씨의 삶의 흐름. 그냥 내 망상일수도 있다.

아저씨는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옆자리 아저씨에게 조심스럽게 “태우시죠”라고 말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그의 성격이 어제의 조심스럽지 못한 나를 떠오르게 했다.

어제 고량주 2병을 마시고 만취한 나는 소주 3병까지 시켰지만 하나도 먹을순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엉망이다. 어제 하루를 또 망가뜨렸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어제 하루에 있었던 사건과 얽힌 사람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평소와 다른 하루였다. 무언가 나는 누군가를 만날 생각에 그 전날부터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했고, 아침에 필라테스를 하고 나서 “오늘 난 정말 괜찮아야해”라는 마음가짐으로 화장도 하고 옷도 골랐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버려졌다. 나만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저녁에 깨닫자 마자 숨이 가빠졌다. 그래서 빠르게 집에 왔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J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Y에게 이렇게 기대했다 실망해서 심장이 힘들어졌는데, 과거의 J가 던진 말 한마디중 하나가 이런 상황이었던 것 같아서 미안했다.

나는 J와 이제 안녕하기로했다. 나는 너무 가슴아팠는데, J는 아무렇지 않아보여서 이상하게 심술이 났고 슬펐다.

너는 그렇게 나와의 이별이 쉬운가?

구질구질하게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봐도 되냐고 굳이 보내버린 메세지. 그리고 그날 보자는 답변. 아직 마주하지는 못했다.

나는 매번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어제도 비겁하게 핸드폰을 방해금지모드로 변경했었다. 도망가는게 싫어서 마주하지 않는다.

어제 의사선생님이 나에게 결정을 조금만 유보해보라고 했다. 의사선생님은 아직 나를 잘 모르는 것 같긴하다. 내가 말을 다 안하기는 하지만,나는 이렇게 매일 매일 깊은 것에서 도망치고 있다. 깊어지는 것, 그리고 나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에서 매일 매일 도망치고 있고, 도망가고 싶다.

그래서 Y가 좋다. Y는 내 못난 모습을 봐도 도망가지 않는다는 느낌을 준다.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제처럼 불편한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또 한참 웅크려진다. 엄마의 품에 있는 것처럼 웅크려지고 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한번 웅크리면, 세상에서 가장 불안하면서 편안하다.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걱정, 멈춰있다는 불안감, 지금의 편안함이 너무나도 모순적이면서 나에게 익숙하다. 모든 결정을 유보하지 않고 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엄청나게 도망치고 있는 나의 모든 결정들.

그러나 나의 이 모순적인 행동이 있어야 나는 진보할 수 있다. 나를 쉬어가게 하는 강제의 장치들이 있어야먄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하고 해낼수 있다. 당장 오늘도 오늘 아침의 웅크림 덕분에 운동을 갈 수 있었고,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 모순적이고 무례하다.

오늘 아침에도 D와 신나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공유했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희망찬 대화. 나는 이렇게 매번 웅크려야지만 새롭게 나아갈 수 있다. 정말 다행이다. 나에게는 웅크려질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나의 집, 나의 지갑, 나의 수많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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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ly published on [Abilifi](https://paragraph.com/@abilifi/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