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축구를 매개로 모든 사람이 뭉친다. 이는 마치 종교처럼 느껴진다. 종교는 정신적 활동이고 스포츠는 신체적 활동이다. 하지만 이 둘은 근본적으로 놀이로부터 탄생했다.
동물 행태를 연구하던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놀이의 차원을 메타커뮤니케이션의 차원이라고 불렀다. 쉽게 말하면 허구의 차원이고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어떻게 보면 무의미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강아지들이 장난으로 물고 노는 행위는 진짜 물기와 다르다. 이들은 지금 놀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이해한다. 즉, 놀이 안에서의 행동은 일상의 행동과 다른 의미를 지닌다. 현실에서의 물기는 공격의 의미를 담지만 놀이에서의 물기는 그렇지 않다. 놀이 중에 하는 행동은 현실의 행동을 모방하되 별개의 의미를 지닌다. 이런 점에서 놀이는 현실과 구분되는 가상(illusion)의 영역이다. ‘illusion’이라는 단어 자체가 라틴어로 ’놀이 중에 있음(in-lusio)’을 뜻한다.
하위징아는 베이트슨의 논의를 발전시킨다. 그는 놀이가 일어나는 영역을 자연적 충동이나 현실적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는 ‘비물질’의 영역으로 규정한다. 일상에서는 생존을 위한 물질적 욕구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지만 놀이에 참여할 때는 그런 요소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래서 놀이는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체험을 가능케 한다. 특히 하위징아는 놀이 속 행위는 “현실의 신호보다 한 차원 높은 의미의 교환”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일상적 대화에서 “밥 먹었어?“라는 말은 상대의 식사 여부를 확인하려는 실용적 목적을 띤다. 그러나 아이들의 소꿉놀이 속 “아빠, 밥 먹어요!“라는 말은 정보 전달과 무관하다. 이는 현실에 없는 새로운 의미 부여의 실천이 된다.
놀이는 ’마치 ~인 것처럼(as if)’의 논리에 따른 가상의 공간을 연다. 이러한 가상의 공간은 진지함으로 채워진다. 이는 자발적으로 진짜가 아니라는 의심을 중단하고 확신을 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해적놀이를 하면서 냄비를 보물 상자로 정했다고 치자. 만약 한 아이라도 “아, 그냥 냄비인데 뭘”라며 놀이를 깨버리면 해적의 세계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런 가상의 세계는 ‘믿는 척’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이렇게 가상의 놀이 세계란 각자의 능동적 몰입과 역할 수행에 의해 창조되고 유지된다. 이는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요구한다.
놀이는 그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절대 규칙이 지배한다. 이런 규칙은 강제가 아닌 자발적 동의에 기반한다. 이는 놀이 참여자들이 자유의지로 규범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위징아는 이런 자발적 규칙 수용이 궁극적으로 새로운 질서 창조로 이어진다고 본다. 놀이의 규칙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법칙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복되고 내면화되면서 점차 하나의 질서를 형성한다.
축구 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축구에는 일상 생활에서 보기 힘든 특별한 규칙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공을 손으로 만지면 안 되고, 상대 선수를 밀거나 발로 걸면 반칙이 된다. 정해진 시간 안에 승부를 가려야 한다. 처음에는 이런 규칙들이 낯설고 불편하다. 하지만 선수들이 규칙에 익숙해지고 반복해서 따르게 되면, 경기장 안에서는 축구만의 독특한 흐름과 양상이 생겨난다. 공격과 수비가 번갈아 이어지고, 파울이 발생하면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골이 들어가면 관중들의 환호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게 된다. 그렇게 축구 경기만의 독특한 질서가 형성된다.
따라서 축구 경기에서 보여지는 질서의 세계는 자연의 법칙이 아닌 축구 규칙에 의해 만들어진 독특한 우주다. 이처럼 우리가 자연의 질서에 단순히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규범을 창조하고 따름으로써 그것만의 문화적 세계를 형성해나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놀이를 문화의 하위 개념, 즉 문화의 일부로 여긴다. 하지만 하위징아는 놀이야말로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더 큰 개념이며 문화는 놀이의 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종교 의식이나 전쟁 같은 문화 현상들도 위와 같은 놀이의 특성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종교 의식은 일상과 분리된 신성한 시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등 놀이와 유사한 속성을 지닌다. 전쟁 역시 약속된 규칙 하에 진행되는 일종의 경쟁이라는 점에서 놀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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