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
    <channel>
        <title>lalalatay</title>
        <link>https://paragraph.com/@lalalatay</link>
        <description>undefined</description>
        <lastBuildDate>Wed, 15 Jul 2026 16:45:26 GMT</lastBuildDate>
        <docs>https://validator.w3.org/feed/docs/rss2.html</docs>
        <generator>https://github.com/jpmonette/feed</generator>
        <language>en</language>
        <copyright>All rights reserved</copyright>
        <item>
            <title><![CDATA[건강한 회고]]></title>
            <link>https://paragraph.com/@lalalatay/4iNIOHhvf9RXm2bVwCDV</link>
            <guid>4iNIOHhvf9RXm2bVwCDV</guid>
            <pubDate>Wed, 25 Jan 2023 10:25:50 GMT</pubDate>
            <description><![CDATA[건강한 회고를 위한 스스로의 작은 규칙 2가지 안에서 회고한다. 나에게 회고는, 단순한 성장을 위함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장 나답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보완제와 같다. 생각하기 보다, 손이 먼저 나가다 보니 이런 점을 개선해보고자 반대되는 조언들로 나를 바꾸려해봤으나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삐걱댔다. 좋아하는 나의 모습마저 둔탁해졌다. 그렇게 해서 내가 찾은 방법이 회고였을 것이다. 나의 모습을 살리면서도 발전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이였다. 바둑에서는 복기한다는 것처럼 그간의 상황을 머리속으로 그리면서 다시 그 공간에서 다른 선택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왜 그 시기에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아주 솔직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회고를 할 때면 가끔은 두렵거나 멈칫하게 된다. 반성문이면 &apos;잘못했습니다&apos; 하고 끝나지만, 회고는 반성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를 파헤치고 해결 방법을 생각해야 하며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래서 못난 모...]]></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건강한 회고를 위한 스스로의 작은 규칙 2가지 안에서 회고한다.</strong></p><p>나에게 회고는, 단순한 성장을 위함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장 나답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보완제와 같다. 생각하기 보다, 손이 먼저 나가다 보니 이런 점을 개선해보고자 반대되는 조언들로 나를 바꾸려해봤으나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삐걱댔다. 좋아하는 나의 모습마저 둔탁해졌다. 그렇게 해서 내가 찾은 방법이 회고였을 것이다. 나의 모습을 살리면서도 발전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이였다.</p><p>바둑에서는 복기한다는 것처럼 그간의 상황을 머리속으로 그리면서 다시 그 공간에서 다른 선택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왜 그 시기에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아주 솔직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회고를 할 때면 가끔은 두렵거나 멈칫하게 된다. 반성문이면 &apos;잘못했습니다&apos; 하고 끝나지만, 회고는 반성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를 파헤치고 해결 방법을 생각해야 하며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래서 못난 모습, 부끄러웠던 순간을 다시 솔직하게 직면해야 하며 그 과정이 가끔 버겁다. 그래서 회고를 할 때면 2가지를 지키려고 한다. 이 두가지 모두 &apos;니체&apos; 책에서 얻은 내용인데요. 인상이 깊어 회고하기 전에 항상 한다.</p><p><strong>1. 아무것도 하지 않은 스스로를 존경하자.</strong></p><p><strong>2. 회고는 밤이 아닌, 아침에 하자.</strong></p><p>첫번 째는, 열심히 했지만 결과에 대해서 <strong>스스로를 칭찬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한게 없다고 자신을 채찍질하지 말자</strong>라는 의미다. 니체의 말이라는 책의 가장 첫번째 장의 내용인데, 처음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자칫 합리화가 될 수 있는 말일 수 있기에 매우 신중하게 다뤄야하나, 회고 때는 꼭 품어야하는 말이다.</p><p>두번 째는, 몸과 마음이 지친 밤에 하는 회고는 반성으로 끝나니, 건강한 회고를 끝에 나오는 <strong>솔루션을 바로 해볼 수 있도록,</strong> <strong>에너지가 넘치는 아침에 회고</strong>를 하려고 한다. 지친 밤, 적막에 가까울 때면 그때는 회고가 아닌 잠을 자야할 때이다. 그래서 꼭 밝은 햇살 아래에서 회고를 하려고한다.</p><p>내가 회고를 하려는 것은, 부족한 나를 메우기 위함이 아니다. 다음 번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결과를 얻고싶기 때문이다. 때문에 <strong>회고를 통해 현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바꾸려고 노력한다.</strong> 예를들어, 나는 왜 아침 잠이 많을까? 왜 늦게 일어날까? 나는 게을러라고 반성하지 않으며, ‘내가 지금 아침에 일어나서 생활하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을까? 혹은 아침에 일어나서 꼭 하고 싶은 일이 먼저 준비되어있는가? 아니라면 미리 전날에 다음의 아침을 준비해보면 어떨까. 내가 아침에 반드시 일어나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내가 꼭 일어나야한다는 강박으로 나를 몰아넣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강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써보자. 이런 고민의 순서로 하나 씩 해본다.</p><p>이렇게 하다보면, 가끔은 합리화의 길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또한 언젠가 다시 회고 하여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을 알기 때문에 나를 믿고 회고하려고 한다.</p>]]></content:encoded>
            <author>lalalatay@newsletter.paragraph.com (lalalatay)</author>
        </item>
        <item>
            <title><![CDATA[하고싶은 일]]></title>
            <link>https://paragraph.com/@lalalatay/rVFni826OsHtJx4k73rW</link>
            <guid>rVFni826OsHtJx4k73rW</guid>
            <pubDate>Wed, 28 Dec 2022 13:58:46 GMT</pubDate>
            <description><![CDATA[하고싶은 일을 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다.하고 싶은 일을 알아야한다.하고 싶은 일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어야한다.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은 찾으면 찾아진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에 대해서는 최근에는 반반이다. 하고 싶은 일은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 뉴스, 아티클을 읽었다. 그리고 그 중에 재미있어 보이고 흥미로운 일도 많이 발견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하고 싶은 일’과는 거리가 느껴졌다. 재밌어 보이고, 흥미로운데 왜 ‘하고 싶은 일’이 아닐까. 아마 재미 = 내가 하고 싶다는 동일하지 않다고 느꼈다. 창업을 잠깐이라도 해보면서 배운 가장 큰 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에게는 오래 품을 수 있는 일이 곧 하고 싶은 일에 가까웠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은 찾는게 아니라, 내 마음에 가장 솔직함을 들어보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찾는 것에 무게를 더 두기보다, 내가 알고 있던 나와 시간을 갖고 새로운 것들에 대해...]]></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하고싶은 일을 하고 싶다.</p><p>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했다.</p><ol><li><p>하고 싶은 일을 알아야한다.</p></li><li><p>하고 싶은 일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어야한다.</p></li></ol><p>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은 찾으면 찾아진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에 대해서는 최근에는 반반이다. 하고 싶은 일은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 뉴스, 아티클을 읽었다. 그리고 그 중에 재미있어 보이고 흥미로운 일도 많이 발견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하고 싶은 일’과는 거리가 느껴졌다. 재밌어 보이고, 흥미로운데 왜 ‘하고 싶은 일’이 아닐까. 아마 재미 = 내가 하고 싶다는 동일하지 않다고 느꼈다. 창업을 잠깐이라도 해보면서 배운 가장 큰 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에게는 오래 품을 수 있는 일이 곧 하고 싶은 일에 가까웠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은 찾는게 아니라, 내 마음에 가장 솔직함을 들어보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찾는 것에 무게를 더 두기보다, 내가 알고 있던 나와 시간을 갖고 새로운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 가치판단을 해보는 시간을 조급하게가 아니라 여유롭게 갖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p><p>최근,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지키고 싶은 ‘가치’ 혹은 만들어 내고 싶은 ‘변화’ 로 느낀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무슨 행동을 얼마나 오래 할 수 있는가 물어보게 되며 그럴때 마다 ‘이걸로 밥은 먹고 살까’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지속 가능하게, 오래 그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 안할 수 가 없다. 가끔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회피 하려고 했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 나의 마음은 ‘하고 싶은 일’ 이라는 단어가 현실 도피의 면죄부처럼 작동했던 것 같다.</p><p>또 다른 마음은 ‘가치’와 ‘돈’을 반드시 양자택일 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라고들 하던가, 그런데 선택은 양자택일이 아니며,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다라는 것을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둘은 불가분의 가치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인 선택을 하며, 스스로 조율해나가야한다.</p><p>생각의 변화가 왔어도 변하지 않은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알고,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것’ 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이다. 하고 싶은 일이 언젠간 발견될 것이야 라며 시간을 흘려보내지도 않으며, 누군가에 의해서 선택해야하는 상황에 몰리지 않도록 옳고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성장하려고 한다.</p>]]></content:encoded>
            <author>lalalatay@newsletter.paragraph.com (lalalatay)</author>
        </item>
        <item>
            <title><![CDATA[천재라고 부를 때]]></title>
            <link>https://paragraph.com/@lalalatay/999hNKWHl3O4WirmH0hC</link>
            <guid>999hNKWHl3O4WirmH0hC</guid>
            <pubDate>Wed, 14 Dec 2022 12:23:55 GMT</pubDate>
            <description><![CDATA[‘OO’은 진짜 천재야 괜한 불편함일 수 있지만, 누군가를 천재라고 칭하는 게 어딘가 불편하다. 천재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노력과 시간에 대한 존중이 아닌 것 같다. 정말로 천재일 수 있지만 천재 중에서 종을 뛰어 넘은 천재성을 가진 사례는 정말 드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타의든 자의든 수많은 시간의 축적이였으며, 관심의 축적이였을 때가 더 많다고 느끼게 때문이다. 그럼 누군가를 천재를 칭하는 모든 것이 불편하느냐 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 참 어렵지만, 특유의 뉘앙스에서 거북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본인이 더욱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싶지 않을 때, 누군가의 성과를 천재라고 말하며 합리화하는 느낌이 들 때 거북함이 드는 것 같다. 천재라는 단어가 칭찬으로 할 때보다, 자신이 느끼는 박탈감을 보호하고자 사용될 때 불편함을 느낀다. 재능이 없다고 느끼기 전에, 몸에 익을 만큼 연습했는 지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만큼 내 것이 됐는지 마음을 돌아본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OO’은 진짜 천재야</p><p>괜한 불편함일 수 있지만, 누군가를 천재라고 칭하는 게 어딘가 불편하다.</p><p>천재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노력과 시간에 대한 존중이 아닌 것 같다. 정말로 천재일 수 있지만 천재 중에서 종을 뛰어 넘은 천재성을 가진 사례는 정말 드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타의든 자의든 수많은 시간의 축적이였으며, 관심의 축적이였을 때가 더 많다고 느끼게 때문이다.</p><p>그럼 누군가를 천재를 칭하는 모든 것이 불편하느냐 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p><p>참 어렵지만, 특유의 뉘앙스에서 거북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본인이 더욱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싶지 않을 때, 누군가의 성과를 천재라고 말하며 합리화하는 느낌이 들 때 거북함이 드는 것 같다. 천재라는 단어가 칭찬으로 할 때보다, 자신이 느끼는 박탈감을 보호하고자 사용될 때 불편함을 느낀다. 재능이 없다고 느끼기 전에, 몸에 익을 만큼 연습했는 지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행동할 만큼 내 것이 됐는지 마음을 돌아본다.</p>]]></content:encoded>
            <author>lalalatay@newsletter.paragraph.com (lalalatay)</author>
        </item>
        <item>
            <title><![CDATA[오래 지켜 보기]]></title>
            <link>https://paragraph.com/@lalalatay/kv1Sb7Vc73raOwt4ONsA</link>
            <guid>kv1Sb7Vc73raOwt4ONsA</guid>
            <pubDate>Fri, 02 Dec 2022 02:13:56 GMT</pubDate>
            <description><![CDATA[‘무언가를 오래 지켜 본 경험이 있느냐’ 포토그래퍼 이강신 작가님이 내게 물어본 질문이였다. 유튜브를 오래, TV를 오래 보는 것이 아닌, 아주 정적인 순간을 오래 바로본 적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눈을 감고, 내가 보았다고 생각한 것을 그릴 수 있는지 이어 물으셨다. 스타벅스 로고를 지금 연필로 그릴 수 있는가. 우리는 스타벅스를 알지만, 그것을 그대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알고 있다는 사물에 대해서 또렷한 상을 그리지 못하는데, 이것을 안다 라고 말하는 게 맞을까하는 의문이 시작됐다. 그러면 내가 알고 있는 건 거짓인가 라는 생각과 함께 혼란스러웠다. 혼란을 잠재운 문장은, 내가 아는 것이 &apos;전부라고&apos; 믿고 있다. 이였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전체 긴 스토리 중 일부이고 찰나의 순간에 가깝다. 하지만 관심이 없거나, 시간이 없거나, 지식이 없다라는 핑계로, 내가 보고 안 것을 전부라고 믿고 싶었지 않을까. 그렇게 믿어야 알수없음 이...]]></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무언가를 오래 지켜 본 경험이 있느냐’ <a target="_blank"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ugc" class="dont-break-out" href="https://www.youtube.com/channel/UC8TLjR90aA3UvLuwp_QEaTA">포토그래퍼 이강신 작가</a>님이 내게 물어본 질문이였다.</p><p>유튜브를 오래, TV를 오래 보는 것이 아닌, 아주 정적인 순간을 오래 바로본 적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리고 눈을 감고, 내가 보았다고 생각한 것을 그릴 수 있는지 이어 물으셨다. 스타벅스 로고를 지금 연필로 그릴 수 있는가. 우리는 스타벅스를 알지만, 그것을 그대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p><p>알고 있다는 사물에 대해서 또렷한 상을 그리지 못하는데, 이것을 안다 라고 말하는 게 맞을까하는 의문이 시작됐다. 그러면 내가 알고 있는 건 거짓인가 라는 생각과 함께 혼란스러웠다. 혼란을 잠재운 문장은, 내가 아는 것이 &apos;전부라고&apos; 믿고 있다. 이였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전체 긴 스토리 중 일부이고 찰나의 순간에 가깝다. 하지만 관심이 없거나, 시간이 없거나, 지식이 없다라는 핑계로, 내가 보고 안 것을 전부라고 믿고 싶었지 않을까. 그렇게 믿어야 알수없음 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p><p>알고 싶다면,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받아드려야한다. 그래야 믿는 것 아니라 사실을 볼 수 있다.</p>]]></content:encoded>
            <author>lalalatay@newsletter.paragraph.com (lalalatay)</author>
        </item>
        <item>
            <title><![CDATA[판단한다는 것]]></title>
            <link>https://paragraph.com/@lalalatay/b4ek1CE4cjfZQXl8xAOv</link>
            <guid>b4ek1CE4cjfZQXl8xAOv</guid>
            <pubDate>Thu, 01 Dec 2022 11:20:14 GMT</pubDate>
            <description><![CDATA[판단을 하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되었다. 왜냐면 판단이 틀렸을 때, 느껴지는 창피함, 수치심, 머쓱함이 뒤따르기 마련이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은 판단을 하다는 것이 쉬웠고, 그 당시에 나의 언어에는 오히려 확신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러 차례 잘못된 판단이 가져온 결과로 고생을 한 뒤에는 판단을 미루거나, 확언을 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말할 때가 있었다. 지나친 확신과 미숙한 커뮤니케이션 스킬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상처 주는 일들이 있는 이후로, 예를들면 &apos;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않을까?&apos; 라는 화법을 종종썼다. 한 동안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많은 사람을 포용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돌아보면 나의 판단이 틀림을 인정하기 싫었거나,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판단을 보류했던 것 같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판단이라는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판단을 하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이되었다.</p><p>왜냐면 판단이 틀렸을 때, 느껴지는 창피함, 수치심, 머쓱함이 뒤따르기 마련이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은 판단을 하다는 것이 쉬웠고, 그 당시에 나의 언어에는 오히려 확신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 같다.</p><p>그러나, 여러 차례 잘못된 판단이 가져온 결과로 고생을 한 뒤에는 판단을 미루거나, 확언을 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말할 때가 있었다. 지나친 확신과 미숙한 커뮤니케이션 스킬로 인하여 다른 사람을 상처 주는 일들이 있는 이후로, 예를들면 &apos;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않을까?&apos; 라는 화법을 종종썼다. 한 동안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많은 사람을 포용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p><p>돌아보면 나의 판단이 틀림을 인정하기 싫었거나,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판단을 보류했던 것 같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판단이라는 무게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은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모호하고 둥리뭉실하게만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틀릴 일이 없기에 마음이 편하다</p><p>하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이 드는 시점이다. 다른 사람에게 사람 좋은 사람이고 싶은 것이가. 틀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가.</p><p>무엇을 얻고 싶은지에 대해서 문장으로 적을 만큼 구체화 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두 부류의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없다. 틀리지 않는 완전 무결하고 완벽한 상태도 아니며, 산뜻한 사람 좋은 부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어쩌면 더 바라는 것은 판단이 틀렸을 때를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p><p>섵부른 판단은 미룰 수 있지만 틀리는게 두려워, 마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판단을 미루는 행동을 지양하고자 한다. 최선을 다해 판단하고, 확언하며 믿을 것이다. 그리고 틀렸을 때 부끄러워 하지않으며 다시 배우고 판단하겠다. 명확히 제안하거나 표현하되 선택을 강요하지 않겠다. 두가지 지키며 바른 판단을 하고싶다</p>]]></content:encoded>
            <author>lalalatay@newsletter.paragraph.com (lalalatay)</author>
        </item>
        <item>
            <title><![CDATA[타인의 시선]]></title>
            <link>https://paragraph.com/@lalalatay/MIzmmxtWCI9pxni5kLxc</link>
            <guid>MIzmmxtWCI9pxni5kLxc</guid>
            <pubDate>Thu, 01 Dec 2022 11:16:25 GMT</pubDate>
            <description><![CDATA[평판. 선입견. 첫인상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신경쓰지 않고 싶으면서도 신경쓰이는 아주 불편한 존재다 최근의 생각은, 자유로울 수 없다 이다. 그들의 시선들도 나의 일부를 본 결과이며, 그것이 완전히 왜곡된 사실이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다만 부족한 정보로 인한 논리적 결함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함이 있는 말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나를 얼마나 알며, 믿는가가 중요해졌다. 적어도 남이 나를 보는 시간보다, 내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더 많아야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 어떻게 불리우던, 나에 대해서 오롯하게 정의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자유로울 수 없다면, 나를 더 관찰한다는 심플한 로직으로 온갖 시선과 편견과 가십에서 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더 안정되게 만들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평판. 선입견. 첫인상</p><p>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p><p>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신경쓰지 않고 싶으면서도 신경쓰이는 아주 불편한 존재다</p><p>최근의 생각은, 자유로울 수 없다 이다. 그들의 시선들도 나의 일부를 본 결과이며, 그것이 완전히 왜곡된 사실이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다만 부족한 정보로 인한 논리적 결함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p><p>그렇기 때문에 결함이 있는 말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나를 얼마나 알며, 믿는가가 중요해졌다. 적어도 남이 나를 보는 시간보다, 내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더 많아야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 어떻게 불리우던, 나에 대해서 오롯하게 정의 내릴 수 있을 것 같다.</p><p>자유로울 수 없다면, 나를 더 관찰한다는 심플한 로직으로 온갖 시선과 편견과 가십에서 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더 안정되게 만들었다.</p>]]></content:encoded>
            <author>lalalatay@newsletter.paragraph.com (lalalatay)</author>
        </item>
    </channel>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