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는 멀리 있지 않다. 얼마 전 내가 그런 경험을 했다.
퇴근 길에 페이스북 서핑을 하다가 누군가가 올린 글을 봤다. “Pakistan imposes economic sanctions on Russia, refuses to repay loans.”라는 제목의 외신 기사였다.
“파키스탄, 러시아 경제 제재 수단으로 10억 달러 이상 빚 안 갚을 것.”
‘좋아요’가 쏟아지고 “ㅋㅋㅋ”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이것 참 신박하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 여론이 높을 때였다. 별 생각 없이 이미지 파일을 그대로 공유했고 “러시아에 빚 남은 분들 이번 기회에 털고 가시길”이라고 코멘트를 달았다. ‘좋아요’과 공유가 쏟아지는데 몇 시간 뒤 페친 가운데 한 분이 댓글을 달았다.
“아무래도 가짜 뉴스 같습니다.”
그때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을 해보니 메이저 언론사 보도는 없었다. 출처를 확인해 보니 ‘The Fauxy’라는 뉴스 사이트였다. 홈페이지에 회사 소개는 다음과 같았다.
“Fauxy는 엔터테인먼트 포털입니다. 모두 재미를 위한 것이며 독자들은 진짜와 진실로 혼동하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서둘러 페이스북 포스트를 삭제한 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돌아봤다.
첫째, 영어로 돼 있으니 외신 보도라고 생각했고, 둘째, 출처를 확인하지 않았다. 잘 모르는 언론사지만 이런 언론사도 있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셋째, 누군가가 공유했으니 사실일 거라고 막연하게 믿었고, 마침 그는 내가 신뢰하는 페친였다. 넷째, 재미가 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쟁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퍼뜨릴 수 있고 사람들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섯째, 나는 원문을 확인하지 않았다. 애초에 원래 포스트가 기사 링크가 아니라 기사를 캡춰한 이미지였고 굳이 다시 찾아보기 귀찮기도 했던 것 같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제목을 구글 검색에 집어넣고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했을 것이고 본문 가운데 흥미로운 문장을 몇 개 골라서 포스트에 소개했을 것이다. 이날따라 이런 과정을 모두 건너 뛴 것은 애초에 이 기사를 내가 발견한 게 아니고 이미 소셜 네트워크에 한참 돌고 있는 이미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최초 이 포스트를 올린 사람의 의도를 지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좀 더 생각해 보면 과연 전쟁을 빌미로 국가 채무를 갚지 않는다는 게 가능한가? 그런 선언을 한다고 해서 그게 의미가 있나? 재미있는 기사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았다는 게 진짜 문제였다. 단순히 기사 이미지를 공유하는 걸 넘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했어야 했다. “재밌긴 한데 선언 이상의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빚이 얼마고 만기가 언제라고 하는군요.” 뭐 이런 코멘트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단순히 공유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 같으면 외신 기사를 인용할 때 뉴욕타임스는 뭐라고 말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곤 하는데 이날은 경황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짜 뉴스’에 대해 이런 저런 글도 많이 쓰고 온갖 토론회에서 잘난 척도 많이 했는데 정작 내가 이런 황당무계한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었다니, 진지하게 반성을 하게 됐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몇 시간 뒤에 중앙일보에서 같은 내용으로 뒷북 기사가 떴다.
“파키스탄의 기막힌 러 제재 동참… 빚 10억 달러 안 갚겠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내가 페이스북 포스트를 올렸던 게 3월1일 오후 7시46분. 삭제한 건 자정이 넘은 다음날 12시12분이었다. 그런데 중앙일보 기사는 그날 오후 3시31분에 떴다. 이미 소셜 미디어에서 한바탕 훑고 지나가고 거짓이라는 게 밝혀진 뒤에 이른 바 메이저 언론사가 뒤늦게 ‘떡밥’을 문 것이다. 내가 처음 페이스북 포스트를 올린 때보다 20시간이나 지난 뒤였고 포스트를 삭제하고 15시간이 지난 뒤였다.
중앙일보도 부랴부랴 기사를 삭제했지만 망신살이 뻗쳤을 것이다. 미디어오늘 박서연 기자가 중앙일보 편집국에 물었더니 “인용한 해외 사이트가 공신력 있는 매체가 아니라는 걸 파악하고, 곧바로 기사를 삭제했다”고 해명했다.
가벼운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이 사건은 ‘가짜 뉴스’의 속성과 확산 경로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황용석 교수는 ‘가짜 뉴스’를 “실제 뉴스의 형식을 갖춘, 정교하게 공표된 일종의 사기물 또는 선전물, 허위 정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박아란 연구위원은 “‘가짜 뉴스’의 개념의 범위를 허위 사실을 고의 또는 의도적으로 기사 형식을 빌어 유포한 것으로 좁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사 형식을 빌려 독자가 기사로 오인해 신뢰도를 높이려 하는 의도가 담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The Fauxy’는 ‘가짜 뉴스’인가? 엄밀하게 분류하면 ‘가짜 뉴스’가 아니라 ‘풍자’나 ‘패러디’의 영역에 가깝다. 대놓고 ‘가짜’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진짜 뉴스를 흉내냈거나 진짜 뉴스인 것처럼 속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뉴스가 유통되는 방식은 전형적인 ‘가짜 뉴스’의 패턴과 같다. 내가 속았던 것처럼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눈길을 끄는 뉴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숙주가 되고 나중에 바로 잡아 봐야 이미 퍼진 거짓을 거둬들일 수는 없다.
우리가 ‘가짜 뉴스’의 개념을 엄밀하게 정의하고 아무데나 ‘가짜 뉴스’라는 딱지를 붙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것은 정의가 명확하지 않으면 대응이 쉽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가짜 뉴스’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가짜 뉴스’와 싸울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다. ‘가짜 뉴스’ 담론에는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과 냉소, 소셜 미디어의 확산과 함께 등장한 음성적인 정보, 속보 경쟁과 파편화된 뉴스 플랫폼 등의 문제가 뒤섞여 있다.
여러 논의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가짜 뉴스’를 언론 보도의 형식을 모방한 것으로 전제한다면 오히려 논의를 좁히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고의성과 허위성을 강조하면 범위가 너무 넓거나 실체가 불분명하게 되고 언론 윤리의 문제로 변질될 수도 있다.
① 애초에 “파키스탄이 빚 안 갚기로 했다”는 글은 ‘가짜 뉴스’였다.② 이걸 받아서 공유한 이정환의 페이스북 포스트는 허위 정보다.③ 중앙일보의 기사는 ‘가짜 뉴스’를 인용한 허위 보도다.
일련의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가짜 뉴스’가 진짜 언론사의 허위 보도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가짜 뉴스’가 아니라 ‘가짜 뉴스’가 옮겨 가는 과정에서 진짜 뉴스의 유통 경로를 잠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①의 ‘가짜 뉴스’를 직접 맞닥뜨렸거나 찾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②나 ③을 읽게 되는데 이미 이 단계에서는 정보의 신뢰 여부가 이정환이나 중앙일보라는 브랜드에 의존하게 된다. 이정환이 올린 글이니까 믿게 되고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니까 믿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누군가의 페이스북 포스트를 보고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앙일보 기사를 ‘가짜 뉴스’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가짜 뉴스’ 보다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국제도서관연맹(IFLA)이 추천하는 ‘가짜 뉴스 판별법’이다.
뉴스 사이트의 ‘회사 소개 ’를 참조하세요
같은 내용을 쓴 다른 매체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기자의 이름이 있는지 확인하세요
범죄 기사는 사법당국의 입장을 확인하세요
정보원을 확인하세요
해외 기사의 경우 원 출처 ’이름’을 확인하세요
농담인지 확인하세요
비슷하지만 BBC의 가이드라인도 있다.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뉴스 제공사인가?
내가 생각한 그 뉴스 소스인가 아니면 비슷한 곳인가?
일어났다고 하는 곳이 지도상에서 정확히 알 수 있는 곳인가?
다른 곳에서도 보도된 적이 있는 이야기인가?
이러한 주장에 대한 하나 이상의 증거가 있는가?
이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이야기일 수 있는가?
그러나 이런 가이드라인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허위 정보의 아주 일부를 다룰 뿐이다. 중앙일보나 한겨레 기사를 의심하면서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래에서 세 가지 사례를 살펴볼 텐데 무엇이 진짜 ‘가짜 뉴스’인지 찾아보기 바란다.
첫 번째 사례.
240번 버스 기사가 울부짖는 아이 엄마를 내려주지 않고 한 정거장을 그냥 가더라는 사연이 언론에 보도된 적 있다. 알고 보니 버스가 좌회전을 하느라 차선을 바꾸는 바람에 바로 내려줄 수 없었지만 10미터쯤 가다가 차선을 다시 바꿔서 20초 뒤에 261미터 떨어진 곳에 아이 엄마를 내려줬다.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아이 나이는 4세가 아니라 7세였다.
이 논란의 발원지는 한 커뮤니티 게시판이었다. 버스 기사의 딸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이 올린 글을 보면 이 버스 기사는 너무 괴로워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다음날 글쓴이는 “나로 인해 상황이 커져서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이 경우 애초에 글쓴이의 문제도 있지만 커뮤니티 게시판에 떠도는 글을 받아 쓴 언론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커뮤니티 게시판의 글은 ‘가짜 뉴스’가 아니다. 문제는 ‘가짜 뉴스’가 아니라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였다. 진짜 언론사들이 잘못된 정보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슈를 키운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두 번째 사례.
2017년 1월, 반기문의 퇴주잔 논란은 많은 사람들이 속고 언론도 속고 아직까지도 잘못 알려져 있는 사건 가운데 하나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씨가 유력한 대권 주자로 떠오르던 무렵, 부친의 묘소를 찾아 성묘하는 장면이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그런데 성묘를 끝내고 퇴주잔을 받자 마자 ‘원샷’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반씨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다. 여러 언론사 기사가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있는데 대표적으로 한겨레 기사를 보면 “선친 묘소에 뿌려야 할 퇴주잔을 본인이 마셔버려 구설에 올랐다”면서 “오랜 외국 생활로 감을 잊은 게 아니냐”, “잘 모르면 하지를 말든가, 굳이 저런 모습을 연출해야 했나” 등의 누리꾼들 반응을 소개했다.
나도 최근까지 이 영상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해 보니 이 ‘움짤’은 앞뒤를 잘라 붙여 만든 편집된 영상이었다. 반씨가 묘소에 술을 뿌리고 다시 술을 받는 장면이 사라진 ‘악마의 편집’이었다.
누가 이 ‘움짤’을 만들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걸 ‘가짜 뉴스’라고 부른다면 ‘가짜 뉴스’를 확산시킨 건 이른바 메이저 언론이었다.
세 번째 사례.
인천의 한 병원 의사가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줄이기 위해 검사를 막고 있다”고 주장한 글이 화제가 된 적 있다. 2020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무렵이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페이스북에서 “정부의 사악한 짓을 퍼트려 달라”며 이 글이 퍼지기 시작했고 다음날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신의 한 수’에서 “의사 양심선언! 정부가 코로나 검사를 막고 있다”는 영상을 내보내면서 걷잡을 수 없이 여론이 악화됐다. 급기야 선거를 이틀 앞둔 4월13일, 중앙일보가 이 글을 인용해 “투표일 다가오자 ‘마술’처럼 환자 급감”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의사가 나중에 “(의도와는 달리) 제 글이 정부가 감염을 숨기기 위해 검사 수를 줄이고 있다는 음모론으로 뒤바뀐 채 편집돼 인용됐다”고 해명했지만 이런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중앙일보는 이 기사에 앞서 [팩트체크 “정부가 총선전 코로나 검사 막는다” 의사가 부른 조작 논란]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고 이 의사가 사례정의 지침을 오해한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 신문사에서도 논조가 다른 기사나 칼럼이 나올 수 있지만 애초에 자신들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사실이 아닌 주장을 끌어들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클레어 와들(Claire Wardle)은 “허위 콘텐츠가 틈새 플랫폼을 빠져나와 주류화 할 때 티핑 포인트가 있다. 바로 그 시점이 기자들이 그 건에 대해 글을 써야 할 유일한 타이밍”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너무 일찍 보도하는 건 곧 사라질 수도 있는 소문이나 오도된 내용에 불필요한 산소를 공급하는 행위다. 너무 늦게 보도한다는 것은 허위 사실이 (국면을) 장악해 결과적으로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커뮤니케이션학부 심영섭 교수는 클레어 와들과 호세인 데라크샨(Hossein Derakhshan)의 분류에 따라 정보의 왜곡(information disorder)을‘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와‘조작된 정보(Disinformation)’,‘악의적 정보(Mal-information)’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것을 제안했다.
‘가짜 뉴스’로 흔히 거론되는 여러 사례를 살펴보면 잘못된 정보와 조작된 정보, 악의적 정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짜 뉴스’는 조작된 정보와 다르고 잘못된 정보와도 다르다. 협의의 ‘가짜 뉴스’로 한정하면 진짜 언론사가 만든 기사냐 아니냐로 구분되겠지만 중요한 건 진짜 뉴스라고 해도 언제나 사실을 전달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뉴스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적극적으로 뉴스에 나오지 않는 진짜 진실을 찾아나서기 때문에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것이다. 뉴스와 뉴스가 아닌 것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실제로 구분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가짜 뉴스는 언제나 있었고 시대의 변화와 플랫폼의 확장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술자리 뒷담화를 통제하기 어려운 것처럼 가짜 뉴스는 평판의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멸하게 돼 있다. 가짜 뉴스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믿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걸 찍어 누르거나 처벌한다고 해서 여론이 정화되는 건 아니다. 원래 여론은 시끌시끌하고 온갖 잡음을 동반하면서도 결국 진실에 수렴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가짜 뉴스’라고 퉁쳐서 부르는 현상의 핵심은 진실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이다. 그리고 주류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뢰의 위기의 시대, 진짜 뉴스의 신뢰를 회복하고 저널리즘의 본질에 집중하는 게 ‘가짜 뉴스’에 맞서는 근본 대안이라고 믿는다. 원론적이지만 공론장의 회복과 평판 시장의 작동, 그 이외의 해법은 있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가짜 뉴스’ 이슈와 관련해 최고의 스탠스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아래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민간인 사찰 문건을 폭로했던 그 스노든이다.
“‘가짜 뉴스’문제는 심판자가 아니라 이용자, 참여자, 시민이 서로를 돕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나쁜 메시지에 대한 해결책은 검열이 아니다. 나쁜 메시지에 대한 해결책은 더 많은 (옳은) 메시지이다. 거짓말이 쉽게 퍼지는 지금이야말로 비판적 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는 점을 서로 인식하고 또 확산시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