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오랫만에 그 전자사전을 쓰기위해 aaa건전지를 샀다. 합정동 나의 방에서 헤르만헤세의 시타르타를 영어책으로 읽고 있었다. 애용하던 샤프 전자사전으로 단어를 찾으며 생각처럼 스멀스멀 떠오른다. 나의 중학생 시절. 구미 아이윌 영어 학원의 모습. 영어 책이 로비에 가득 했고,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원장선생님의 방, 거기에서 대여섯명 정도서 영어문학을 한 패러그래프씩 돌아가며 낭독 하던 분위기. 그 원장선생님 자리 옆에 그 컴퓨터가 맥킨토시가 아니었나 지금 생각해본다. 처음 그 학원 간 날 그 컴퓨터로 토플을 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원장님은 스티브잡스의 많은 부분을 닮았었다. 마르고 키큰 체형과 그 동그란 안경, 매서운 눈빛. 매일 똑같은 흑색 목티 니트. 미국의 어느 유명 대학을 다녀온 그쌤은 애플이 한국에서 그렇게 알려지지않고, 내 주위 대부분 옙이나 아이리버, 아이오디오 앰피쓰리를 갖고 있던 시절에 흔치않은 애플 마니아였을지도 모른다. 그 학원은 정말 독특했다. 각 방에 자율적으로 공부를 하는 엘리트로 보이던 형 누나들. 한 누나가 해리포터 원서책을 그림책마냥 술술 넘기던 모습이 생각난다. 대원외고를 나오고 미국 대학 입학을 기다리는 김에 고향에 내려온 조교 선생님은 본인이 예일대를 나온 과외 선생님에게 특강으로 배웠다는 에세이 쓰는 양식을 우리에게 알려줬었다. 실제로 나는 IBT라고 불렀던가 하는 토플시험에서 글쓰기만 그럭저럭한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나머지는 거의 반타작 점수였다. 그 학원은 정말 독특했는데 수능날 저녁에 중학생 아이들에게 당일 수능 영어시험을 보게 했었는데 대부분 80점을 넘었었다. 나는 60점대 였던걸로 기억한다. 그때 기억나는 똑똑한 아이들 이름이 떠오른다. 민철이, 현철이, 성탁이, 장호 등등등. 난 그때 정말 학교 시험 영어 90점은 늘 넘는 나보다 훨씬 영어가 특출나고, 영어뿐아니라 그냥 똑똑함이 흘러나오는, 어렸을때 외국에서 몇년 살다오기도한 그런 이국적인 친구들에게 참 부러움을 많이 느꼈었다. 에픽하이가 한창 떠있던 그 시절. 내가 선망하던 타블로를 닮은 친구들. 난 정말 영어를 잘하고 싶고… 그것도 그런데 그냥 전체적으로 똑똑해지고 싶었다. 에미넴을 들려주던 친구들, 그 친구들이 소울컴퍼니도 들려주었고, 가리온도 들려주었고, 더콰이엇 상자속의 젊음도 들려주었고. 그 시절 랩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에미넴의 when I’m gone을 스스로 해석하려고 노력했었다. 투팍 비기노래도 그때쯤 듣기 시작했다. 나에게 힙합은 그런식으로 유입이 되었다. 디지털로 유입된 문화. 거기서는 그 현장이 삶이었을테고, 나에겐 그것을 아이윌 학원을 다니며 디지털로 바라다 보는 것이 삶이었다. 한국 힙합. 무브먼트, 특히나 에픽하이. 그것을 하루종일 귀에 꼽고 다니는 그것이 나의 삶이 었다. 아, 그리운데 불행하던 그때의 삶… 난 중2 당시 이미 많은 일을 겪고, 상처가 있었다. 학교 일진 무리의 한 친구와 크게 싸우고, 그 사건으로 짱에게 교실에서 명치를 맞고 고꾸라지고. 학급 친구들이 그 광경을 보고. 다들 어떻게 못하는 약한 학우들에게 실망감과 불가항력을 느끼고… 하지만 난 당시에도 나르시즘이 있었으므로. 나만의 독특성을 추구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경력을 개인적으론 훈장처럼 느꼈기도 하였다. 난 어짜피 힙합하는 더 멋있는 형들에게 기댈수 있었다. 똑똑한 외국 학교 대학생이 되는 상상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초등학교때부터의 나의 우상 브루스리도 있었다. ‘너보다 덩치가 크면 미간부터 주먹으로 때리라’던 우리 아버지도 있었다. 너무나 오랫만에 그 전자사전을 쓰기위해 aaa건전지를 샀다. 싯타르타를 30페이지 정도 읽다가 아서스 젠북이라는 나의 노트북을 펼쳐 이렇게 글을 쓴다. 샤프 전자사전의 확대버전인 것만 같은 이 노트북은 혜린이가 줬다. 난 혜린이랑 곧 결혼을 한다. 오늘은 상견례 날이었다. 난 인생내내 자유를 쟁취하러 많은 결단을 해왔고 많은 걸 얻었다. 피처링 포함 150곡이 넘는 곡을 냈고 4개의 개인 앨범을 냈다. 내가 해보고싶은 머리스타일로는 다 살아보았고. 읽고 싶은 책을 얼마든지 읽기위해 자퇴로 시험기간을 없앴다. 아이가 생겼다. 며칠전 꽤 규모 있는 촬영장에서 뮤비 배우가 되는 경험도 해보았다. 노래방에서 늘 보던 뮤비 배우. 난 내가 바라만보던 많은 것이 되어 보았다. 크고 작은 무대에 많이 서 보았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펴보았다. 더 많은 것도 해보았다. 싯다르타 처럼 명상과 식이요법등에도 한때 빠져보았다. 많은 것을 경험했다. 이제 목수가 되어간다. 예수같은 목수와는 많이 다르지만 난 점점 아버지로 넘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