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체인: 1화] 코드명 ‘사토시’ (Prologue + Ch. 1)

[그림자 체인: 1화] 코드명 ‘사토시’ (Prologue + Ch. 1)

연재 공지|Mirror 3부작

  • 제1부: 유령 (The Ghost)

  • 제2부: 내전 (The Civil War)

  • 제3부: 왕좌 (The Throne)

**요약(Excerpt)**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유령이 9페이지 백서를 던지면서 시작된 보이지 않는 전쟁.그림자(정부), 왕(DPR·거래소), 황제(채굴자·월가)가 ‘코드’를 차지하기 위해 맞붙는다.

슬러그: shadow-chain-ep1-satoshi태그: fiction, crypto, bitcoin, cypherpunk, thriller, politics, economy, Korean


Prologue

2008년 10월 31일, 23시 14분. 미국 버지니아, CIA 본부(랭글리) 지하 3층, EIT(신기술위협분석팀).

사무실의 공기는 차갑게 식은 커피와 오존 냄새, 그리고 수백 개의 냉각 팬이 토해내는 열기로 질척했다.

분석관 마이클 젠킨스(Michael Jenkins)는 뻑뻑한 눈을 비볐다. 그의 모니터는 온통 ‘붉은색’이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월스트리트라는 심장에서 터져 나온 피처럼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미래의 위협’을 찾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현재의 붕괴’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이 업무의 전부였다.

“젠장, 또야.”

옆자리 분석관이 욕설을 뱉었다. 아이슬란드 전체가 국가 부도를 선언한 참이었다.

“마이클.”

국장 대리(Deputy Director) ‘핸더슨’이 그의 큐비클로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72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사람 특유의 잿빛이었다.

“보고할 거라도 있나? ‘미래의 위협’ 양반?” 핸더슨의 목소리엔 노골적인 피로와 냉소가 섞여 있었다. “지금 ‘현재’가 불타고 있는 거 안 보이나?”

“그래서... 이걸 보셔야 합니다, 국장님.”

젠킨스는 방금 ‘쓰레기통(Trash Can)’이라 불리는 저신뢰도 정보 수집함에서 건져 올린 9페이지짜리 PDF 파일을 스크린에 띄웠다. ‘사이퍼펑크(Cypherpunk)’ 메일링 리스트에서 발신된 것이었다. 정부의 감시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암호학 긱(Geek)들의 낙서장.

[제목]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발신자]** Satoshi Nakamoto

핸더슨이 서류를 받아 들고 미간을 찌푸렸다. “비트코인? 이게 뭔가? 또 다른 리버티 달러(Liberty Dollar)인가? 아니면 e-Gold 같은 놈들?”

그가 언급한 것들은 모두 미 재무부에 의해 ‘불법 사설 화폐’로 규정되어 박살 난 프로젝트들이었다.

“그보다 훨씬 정교하고, 훨씬 위험합니다.”

젠킨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지난 3시간 동안 이 백서를 해체하고 분석했다.

“이 시스템엔... ‘목’이 없습니다.”

“목?”

“네. 우리가 압류할 ‘서버’가 없습니다. 체포할 ‘CEO’도, 동결시킬 ‘은행 계좌’도 없습니다. 발행 주체도, 은행도, 정부도 없습니다. 국장님.”

젠킨스가 화면을 가리켰다. “이건 그 누구도 거래를 막거나, 되돌리거나, 검열할 수 없는 ‘P2P 금융 네트워크’입니다.”

핸더슨의 잿빛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는 월스트리트의 붕괴를 막기 위해 천문학적인 달러를 찍어내는 FRB(연준) 의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통제’. 그것이 그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작성자는?”

“유령입니다. ‘사토시 나카모토’. 일본인 이름이지만, 사용하는 영어나 시간대를 보면 영국 연방 출신일 가능성이 큽니다. 혹은... 의도적인 위장이겠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젠킨스.” 핸더슨이 백서를 책상에 던졌다.

“만약 이 ‘코드’가 진짜 작동한다면,”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건 달러 패권에 대한 선전포고야. 테러리스트, 마약상, 적대국이 우리 감시망(SWIFT) 밖에서 돈을 주고받는다는 뜻이지. 이건 금융 무기야.”

“맞습니다. 그래서...”

“당장 ‘사토시’가 누구인지, 이 코드를 멈출 방법이 있는지 알아내.”

“국장님.” 젠킨스가 핸더슨을 똑바로 바라봤다. “백서를 세 번 읽었습니다. 멈출 방법은... 없습니다.”

핸더슨은 대답 대신, 식어버린 커피를 위장에 털어 넣었다. 그날 밤, 월스트리트가 무너지는 소리 뒤편에서, 아무도 모르게 새로운 전쟁의 총성이 울렸다.


Ch. 1 — 0번 블록에 새겨진 묘비명

두 달 후. 2009년 1월 3일, 18시 15분. (불특정 장소, 헬싱키 혹은 런던 근교)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을 갈랐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모니터의 마지막 코드 라인을 바라보았다. 밖은 이미 어두웠지만, 그는 시간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의 등 뒤에서 낡은 라디오가 BBC 뉴스를 중얼거렸다.

“...영국 재무장관 알리스태어 달링은, RBS와 로이드 은행에 대한 2차 구제금융 투입을...”

사토시가 조소했다. ‘구제금융(Bailout)’.

실패한 자들에게 평범한 사람들의 세금을 쏟아부어 연명시키는 행위. 부패한 ‘신뢰’의 정점.

그는 수년간 준비한 자신의 코드가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님을 알았다. 이것은 ‘선언’이었다.

그는 제네시스 블록(Genesis Block), 즉 네트워크의 첫 번째 기록인 0번 블록의 코인베이스(Coinbase) 매개변수 안에, 방금 라디오에서 들은 뉴스의 헤드라인을 망치로 새기듯 각인시켰다.

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낡은 시스템의 묘비명. 새로운 시스템의 주춧돌.

그는 ‘컴파일’ 버튼을 눌렀다. 몇 분 후, ‘비트코인 v0.1’이 완성되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풀어놓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은행의 허락, 정부의 감시, 그 어떤 중앙의 ‘신뢰’도 필요 없는 자율적인 경제 시스템.

그는 PGP로 암호화된 메일링 리스트에 접속했다. 아담 백, 웨이 다이, 그리고 할 피니.

같은 시각. 캘리포니아.

“드디어... 나왔군.”

할 피니(Hal Finney)는 자신의 메일함에 뜬 ‘Satoshi Nakamoto’라는 이름을 보고 미소 지었다. PGP 코퍼레이션의 베테랑 개발자이자, 사토시 이전에 ‘작업증명(Proof-of-Work)’ 개념을 실험했던 선구자였다.

그는 10월에 백서를 보고 사토시와 몇 차례 메일을 주고받았었다. 그는 이 코드에서 단순한 전자화폐가 아닌, ‘가능성’을 보았다.

그는 즉시 v0.1을 다운로드해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했다. 코드는 투박했지만, 그 심장(아이디어)은 완벽하게 뛰고 있었다.

그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이 소프트웨어를 실행시킨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 작은 혁명에 동참하기로 했다.

2009년 1월 9일, 랭글리.

“국장님! 놈이... 코드를 배포했습니다!”

젠킨스가 핸더슨의 사무실 문을 거의 부술 듯이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0번 블록의 코드를 분석한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핸더슨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그래서? 실패한 e-Cash가 한두 개인가?”

이건 다릅니다!

젠킨스가 보고서 첫 장을 핸더슨의 책상에 펼쳤다. 0번 블록에 각인된 ‘타임스’ 지의 헤드라인이 형광펜으로 거칠게 그어져 있었다.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상황실의 공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핸더슨의 잿빛 얼굴이 분노로 붉어졌다.

이것은 더 이상 ‘기술적 실험’이 아니었다. 이것은 ‘정치적 조롱’이자, 명백한 **‘테러 행위’**였다.

“이 유령... 사토시가...” 젠킨스가 숨을 골랐다. “방금, 세계 금융 시스템의 심장에 암호화된 칼을 꽂았습니다. 그리고 그 칼자루에 ‘너희는 실패했다’고 새겨 넣었습니다.”

핸더슨이 인터폰을 집어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강철처럼 차가웠다.

“EIT 전원, 비상 소집. 프로젝트 ‘비트코인’, 위협 등급 ‘B-알파(B-Alpha)’로 즉각 격상한다. NSA, 재무부(OFAC)에 공조 요청해.”

그가 젠킨스를 노려보았다.

“자네 임무는 하나야, 젠킨스. 저 유령 ‘사토시 나카모토’의 실체를 찾아내. 그 칼을 뽑아내.”

(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