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s journey) 군대 후임이 그림에 담았던 것 / 보이는 것이 전부다 / 사자나라의 얼룩말

오늘 소개해드릴 사람은,

제가 프로필 사진으로 자주 쓰는 초상화를 그려준 친구입니다. 한때는 군대 후임이었죠.

제가 병장을 달았을때쯤 이 친구가 들어왔고,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겨 찾아갔습니다.

제가 만나봤던 몇명의, 그림을 그린다는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 아이가 훈련소에서 자대배치까지 그려왔던 수첩을 함께 넘기면서, 작품들에 대한 제 느낌과, 그 아이의 의도를 이야기하며 읽어갔습니다.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림이 다가 아니라, 이 친구는 자기 생각이 있었고, 그걸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미술'이라는 말을 쓰기도 꺼려했을 정도로, 갇혀 있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제가 매일 밤 9시, 점호가 끝나고, 10시에 취침 전까지, 이 친구에게 스물스물 걸어가서 봤던 작품들.

그건 확실히, 그림을 넘어서 스토리였습니다. 참 매력적이었고, 그냥 재미있었습니다.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전역하고 나서, 너에게 꼭 연락하겠다고 다짐하며, 번호를 따갔죠. 아직 군대에 남아서, 싸지방에서 제 질문에 답해준 친구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마지막날, 그려주었던 초상화는, 침묵보다는 대화 속에서 그려졌습니다. 저와 대화하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자연스레 저의 특성들이 그림에 담기게 되었습니다.

Q: 너의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메세지나, 사고방식, 기법이 있을까?

A: '보이는 것이 전부다'/ '왜' /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맞는 것은 아니다'

이 세개가 내가 평소에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작업 과정에서 가장 많이 고려하는 거야.

오늘은 첫번째 ‘보이는 것이 전부다’에 대해 이야기해볼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는 말은 흔하게 들리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야.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말로 내 감정을 전달한다고 하면. 내 마음 속의 원관념(본질) -- 원관념에 대한 내 주관적인 해석 -- 내 표현방식 -- 너의 해석 / 이렇게 몇가지의 변형을 거쳐서 수용되니까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기 어려워.

예술에서라면 메세지가 전달되지 않는 모호한 작품이 탄생하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실생활이면 소통하지 못하고 충돌하는 상황, 혹은 폭력 같은 부도덕한 상황이 벌어질꺼야.

누구에게나 자신에게만 보이는 무언가는 있고, 특히 예술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무언가에 굉장히 자부심을 느끼고 표현하고 싶어 하지. 근데 아무리 뛰어난 무언가를 마음 속으로 가지고 있더라도, 그걸 전달한다는건 별개의 문제고, 이게 예술이 어려운 이유라고 생각해.

사람들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부분, '나는 분명 진심을 담았는데, 이 안에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는데.. 라고 생각하지. 손가락만 빨면서 사람들이 어떻게든 이해해주길 바라고, 알아주지 못하는 그들이 무지한 거라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어. 더군다나 자기 작품을 몰라주는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겠다며 선을 긋는 행위가 반복되어, 소위 '그들만의 리그'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이게 너무 싫어.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미술을 하는 것도 맞지만, 단순히 내뱉는 데서 그치는 자기만족을 하려고 미술 하는 건 아니야.

무엇('본질')을 표현할 것이냐 만큼, 어떻게(전달 방식) 표현할 것이냐도 중요해.

거의 동급으로 중요한데, 항상 간과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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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작품 '사람 사는 곳' = 학교에서의 성적 경쟁하는 모습이 싸움터 같았고, 이 경쟁에서 먼저 올라가려는 사람,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는 사람, 떨어진 사람을 표현)

둘 중 어느 것 하나라도 고려되지 않는다면 미술을 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전달하기 위해서 하는거야. 사람들한테 미술을 주고 싶거든.

받아들이는 사람이, 마주한 작품의 껍데기(보이는 것)에서 그 보이지 않는(의도-본질) 무언가를 느끼지 못한다면, 의도가 아무리 깊었다고 하더라도 제작한 의의가 없어진다는 뜻이야. (본인만족이나, 미술사적인 작품을 남기고 싶다면 그 나름대로 가치 있겠지만)

그럼 작가들은 왜 이걸 알면서도 작품 제작에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는 걸까?

작가들도 사람들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준다면 최고지.

하지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어.

앞서 말했듯이 작가들은 모두 자기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 예술을 하므로.

사람들의 수용을 고려한답시고, 작품의 설명이라던가, 마케팅이나 부수적인 요소라도 바꾸면 바꿀수록, 처음에 표현하고자 했던 본질은 영향을 받아 버린다는 거야.

애초에 예술을 하는 이유가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선데, 그 본질에 영향을 끼치자면 예술을 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거지. 내 관점에선 이 둘, 본질과 - 표현방식의 괴리가 너무 안타까워.

둘이 만나야 할 텐데. 그럼 이 상황을 어떻게 파훼할 수 있을까?

작가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본질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오롯이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지.

( 그 방법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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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울질이 구상부터 제작까지 내 작업 전체를 거쳐 계속되는 사고야.

처음으로 돌아와서, '보이는 것이 전부다'는 말의 의미는, 사람들은 절대 서로의 진심(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는 없다는 현실을 상기시키는 거야. 예술가들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것(자신에게만 보이는)'을 전달하기 위해 제일 노력하는 사람 중 하나지.

마음을 그대로 꺼내놓은 듯한 순수한 작품들이 관람객의 시선에 한 1분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 슬퍼.

하지만, 진심을 전달하는 직업인 예술가라면, 이 안타까운 현실을 직시하고.

내게는 보인다면서 '보이지 않는 것' 자체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이게'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지.

결국 나 스스로에게도 '보이는 것이 전부다'라는 어쩌면 회의적이고 체념적이지만, 역설적인 말로 나를 자극하는 거야.

'내게만 보이는 것', 즉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게 예술가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보이는 것이 전부다'는 내 가치관을 되새기면서 작업하려고 노력해.

저는 이 친구가 지향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게 정말 투자와 비슷한 구석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투자도, 단순히 다가올 미래를 예측한다고 큰 돈을 벌 수는 없습니다. 딱 10년 전, 전기차가 반드시 다가올 미래인 것에는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 되냐’, ‘투자자들에게 언제 인정 받느냐’는 질문이 투자에서는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구요.

다가올 것이 무엇인지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결국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들고, 남들이 이게 기회라는 것을 알아차릴때까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그 ‘참는 기간’을 최대한 짧게 만드는게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이랑 동떨어져서, 나만의 아이디어를 가졌다고, 사람들이 어리석어,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해준다고 한탄하는 것이 1년이 될지, 3년, 5년, 10년이 될지도 모릅니다.

딱 대중에게서 한 발자국 앞서는 것이 가장 좋은 투자 기회이구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랄프 웬저’의 ‘사자나라의 얼룩말’이라는 이야기와 아주 흡사했습니다.

얼룩말이 우굴우굴대는 무리 속에서 지내면, 뜯어먹을 풀이 아주 적고, 반대로, 무리의 가장자리에서 지내면 사자에게 위협받을 확률이 아주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이에서, 사자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리, 하지만 먹을 수 있는 풀이 충분히 있는 자리를 찾는 것이 가치투자이구요.

자신의 생각(본질)을 지키지만,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직관적으로 만드는 능력. 왠지, 이 친구의 이야기가, 투자든, 예술이든, 나만 아는 ‘가치’에 갇혀있지 말고, 대중에게 어떻게 보일지, 표현방식에도 굉장한 노력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