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 따스한 포옹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다. 인간에게 외로움은 영원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외로움은 언제나 존재하는 거고, 그 외로움을 잠시 잊거나 아니면 다른 감정으로 외로움을 대체하는 것은 아주 잠깐의 순간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공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언제나 외로움을 느낀다. 지금 글을 이 쓰는 순간에도 외로움을 느끼고 있지만 다행히 지금은 월드컵 기간이라, 새벽 4시의 순간에도 온라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아주 잠시 외로움이 사라진다. 다같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다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이 끝나고 나면, 다시 한번 조용해지는 내 책상. 주변으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나의 공간. 이것이 나는 두렵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 고요함을 느끼는 것에 대해 고 을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싶다. 도파민이 분비되는 환희의 현장에서 순식간에 모든것이 사라져버리는 고요한 환경. 이 고요한...
9/4 오늘의 존재
오늘 한 아이가 있어줘서 고마워요 라는 말을 해주었고, 나는 그에 대한 답변으로 너도 존재해줘서 사랑해 라는 말을 했다. 존재해서 사랑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우리가 인간으로써 유일하게 모두가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존재하는 것 뿐이다. 누구나 이것만큼은 동일하게, 똑같은 기준으로, 존재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을 했다. 인간이 유일하게 다른 존재, 다른 생명체, 다른 동물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존재한다는 것은 심장이 뛰는 한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사람이 이 존재함을 하지 못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바로 죽음이다. 그리고 누구나 이 존재함을 못하는 순간은 온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자만이 할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음을 피할 수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존재함과 존재하지않음. 그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존재함은 심장이 뛰고 뇌가 살아있거나, 존...
11/14 이게 끝이아니라면
큰 트리거가 사라지고 난 뒤,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했고, 후회했다. 참을수 없는 죄책감이 올라온다. 최근엔 거의 술을 마시지않아 잘 누르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울컥울컥 올라오는 삶을 끝내고 싶은 의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잘 있다가도 불쑥 튀어나오는 후회와 아련한 심장. 술을 마실때에는 이 감정이 더욱 격해지는 것 뿐이었고, 그냥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아 격해지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기분. 모든 것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이 감정을 가진채 살아가고 싶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항상 그랬듯이 난 용기가 부족했고,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항상 다른 방법으로 이 감정을 극복해보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 털어놓자마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감정이 격해졌다. 내 스스로가 병신같다고 했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솔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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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따스한 포옹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다. 인간에게 외로움은 영원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외로움은 언제나 존재하는 거고, 그 외로움을 잠시 잊거나 아니면 다른 감정으로 외로움을 대체하는 것은 아주 잠깐의 순간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공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언제나 외로움을 느낀다. 지금 글을 이 쓰는 순간에도 외로움을 느끼고 있지만 다행히 지금은 월드컵 기간이라, 새벽 4시의 순간에도 온라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아주 잠시 외로움이 사라진다. 다같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다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이 끝나고 나면, 다시 한번 조용해지는 내 책상. 주변으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나의 공간. 이것이 나는 두렵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 고요함을 느끼는 것에 대해 고 을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싶다. 도파민이 분비되는 환희의 현장에서 순식간에 모든것이 사라져버리는 고요한 환경. 이 고요한...
9/4 오늘의 존재
오늘 한 아이가 있어줘서 고마워요 라는 말을 해주었고, 나는 그에 대한 답변으로 너도 존재해줘서 사랑해 라는 말을 했다. 존재해서 사랑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우리가 인간으로써 유일하게 모두가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존재하는 것 뿐이다. 누구나 이것만큼은 동일하게, 똑같은 기준으로, 존재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을 했다. 인간이 유일하게 다른 존재, 다른 생명체, 다른 동물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존재한다는 것은 심장이 뛰는 한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사람이 이 존재함을 하지 못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바로 죽음이다. 그리고 누구나 이 존재함을 못하는 순간은 온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자만이 할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음을 피할 수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존재함과 존재하지않음. 그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존재함은 심장이 뛰고 뇌가 살아있거나, 존...
11/14 이게 끝이아니라면
큰 트리거가 사라지고 난 뒤,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했고, 후회했다. 참을수 없는 죄책감이 올라온다. 최근엔 거의 술을 마시지않아 잘 누르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울컥울컥 올라오는 삶을 끝내고 싶은 의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잘 있다가도 불쑥 튀어나오는 후회와 아련한 심장. 술을 마실때에는 이 감정이 더욱 격해지는 것 뿐이었고, 그냥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아 격해지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기분. 모든 것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이 감정을 가진채 살아가고 싶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항상 그랬듯이 난 용기가 부족했고,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항상 다른 방법으로 이 감정을 극복해보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 털어놓자마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감정이 격해졌다. 내 스스로가 병신같다고 했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솔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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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는 “높은 마음”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보통 노래를 들을때 노래의 음절을 먼저 듣고, 음절을 듣다보면 가사를 듣는 형식으로 음악을 감상한다. 그래서 처음엔 몰랐지만 듣다보면 들려오는 구절이 항상 존재한다.
그런데 이 높은 마음으로 라는 노래의 가장 클라이막스에는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낮은 몸에 갇혀있대도” 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깨달은 순간부터 궁금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높은 마음이라는건 무슨 뜻일까.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정의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어떠한 객체라고 할 수도, 어떠한 영혼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단어가 현실세계에서 아주 다양하게 쓰이고 있고, 사람과 사람간에 커뮤니케이션 되는 어떠한 구체화된 명사라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 “마음” 이라는 단어는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가사를 쓴 사람은 마음을 무엇이라 생각했기에 마음에 “높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수 있었던 걸까 하는 상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보통 높은 이라는 형용사는 우리가 눈으로 쳐다볼 수 있는 무언가, 또는 위에 있는 무언가에 붙이는데, 마음이라는 단어에도 “높은” 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까? 하는 상상 같은 것들이다. 반대로 “낮은”이라는 형용사도 동일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높은 마음”, “낮은 몸”은 무슨 뜻일까를 상상하다가 보면 첫번째로는 몸이 담을 수없는 큰 마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육체는 정해져있다. 숫자로 규격화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의 키는 몇 센치미터 인지, 나의 몸무게는 몇 키로그램인지, 나의 팔 길이는 얼마인지 등등을 알 수 있는 것기 때문에 정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규격화할 수 없다. 규격화 할수 없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무게로도, 크기로도 확인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높은 이라는 뜻이 크다 라는 뜻을 대변하는 것이고, 작은 이라는 것은 규격화되어서 실체화 되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큰 마음과 높은 마음은 너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높은 마음. 뭔가 크다라는 느낌은 전체를 감싸고 넓게 퍼져있는 느낌이었지만, 높다라는 느낌은 좀더 멀리, 나의 키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잇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크다와 작다는 작다가 크다에 속하지만, 높다와 낮다는 서로가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고 반대의 성향을 띄게 된다라는 점에서 다른 설명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 가사를 봤다.
평범함에 짓눌린 일상이, 사실은 나의 일생이라면
밝은 눈으로 바라볼게, 어둠이 더 짙어질수록
인정할 수 없는 모든게, 사실은 세상의 이치라면
품어온 옛 꿈들은 베개맡에 머릴 묻은채
잊혀지고 말겠지만,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가사를 보고나니 어쩐지 약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평범함에 짓눌린 일상, 인정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이 작은 몸을 뜻한다면, 품어온 옛꿈이 나의 높은 마음을 뜻하는 건 아닐까 ? 하는 생각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나의 품어온 옛꿈이 높은 마음을 말하는 거라면, 나의 높은 마음은 어떤 걸까. 나에게도 높은 마음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반대로 평범함에 짓눌린 나의 일상이라는 가사는 너무도 지금 나의 상황에 맞았다. 나는 살기위해 살아가고 있다. 이게 나의 삶이다.
나의 품어온 옛꿈들은 어디로 가있는지 모른채 나는 살아가고 있다. 베개맡에 뭍어둔 나의 옛꿈. 이 조차도 나는 안개속에 품어져있는 것 처럼 뿌옇다.
얼마전 의사선생님이 나에게 가장 최근에 무엇을 하면서 행복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없었다. 생각이 나질 않는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은 차근차근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나의 행복했던 시절을 되감기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라고 했다.
나의 높은 마음, 나의 품어온 옛꿈은 어디에 있을까. 과거 내가 행복했을 시절의 나는 무엇을 일상으로 삼으며 꿈을 만들어왔을까, 궁금해진다.
나의 낮은 몸은 오늘도 높은 마음을 찾으며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비록 높은 마음은 아직 가지지 못했더라도, 오늘의 베개 맡에 머리를 뉘이며 높은 마음을 한번 더 꿈꿔보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는 “높은 마음”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보통 노래를 들을때 노래의 음절을 먼저 듣고, 음절을 듣다보면 가사를 듣는 형식으로 음악을 감상한다. 그래서 처음엔 몰랐지만 듣다보면 들려오는 구절이 항상 존재한다.
그런데 이 높은 마음으로 라는 노래의 가장 클라이막스에는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낮은 몸에 갇혀있대도” 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깨달은 순간부터 궁금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높은 마음이라는건 무슨 뜻일까.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정의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어떠한 객체라고 할 수도, 어떠한 영혼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단어가 현실세계에서 아주 다양하게 쓰이고 있고, 사람과 사람간에 커뮤니케이션 되는 어떠한 구체화된 명사라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 “마음” 이라는 단어는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가사를 쓴 사람은 마음을 무엇이라 생각했기에 마음에 “높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수 있었던 걸까 하는 상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보통 높은 이라는 형용사는 우리가 눈으로 쳐다볼 수 있는 무언가, 또는 위에 있는 무언가에 붙이는데, 마음이라는 단어에도 “높은” 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까? 하는 상상 같은 것들이다. 반대로 “낮은”이라는 형용사도 동일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높은 마음”, “낮은 몸”은 무슨 뜻일까를 상상하다가 보면 첫번째로는 몸이 담을 수없는 큰 마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육체는 정해져있다. 숫자로 규격화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의 키는 몇 센치미터 인지, 나의 몸무게는 몇 키로그램인지, 나의 팔 길이는 얼마인지 등등을 알 수 있는 것기 때문에 정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규격화할 수 없다. 규격화 할수 없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무게로도, 크기로도 확인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높은 이라는 뜻이 크다 라는 뜻을 대변하는 것이고, 작은 이라는 것은 규격화되어서 실체화 되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큰 마음과 높은 마음은 너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높은 마음. 뭔가 크다라는 느낌은 전체를 감싸고 넓게 퍼져있는 느낌이었지만, 높다라는 느낌은 좀더 멀리, 나의 키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잇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크다와 작다는 작다가 크다에 속하지만, 높다와 낮다는 서로가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고 반대의 성향을 띄게 된다라는 점에서 다른 설명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나머지 가사를 봤다.
평범함에 짓눌린 일상이, 사실은 나의 일생이라면
밝은 눈으로 바라볼게, 어둠이 더 짙어질수록
인정할 수 없는 모든게, 사실은 세상의 이치라면
품어온 옛 꿈들은 베개맡에 머릴 묻은채
잊혀지고 말겠지만,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가사를 보고나니 어쩐지 약간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평범함에 짓눌린 일상, 인정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이 작은 몸을 뜻한다면, 품어온 옛꿈이 나의 높은 마음을 뜻하는 건 아닐까 ? 하는 생각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나의 품어온 옛꿈이 높은 마음을 말하는 거라면, 나의 높은 마음은 어떤 걸까. 나에게도 높은 마음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반대로 평범함에 짓눌린 나의 일상이라는 가사는 너무도 지금 나의 상황에 맞았다. 나는 살기위해 살아가고 있다. 이게 나의 삶이다.
나의 품어온 옛꿈들은 어디로 가있는지 모른채 나는 살아가고 있다. 베개맡에 뭍어둔 나의 옛꿈. 이 조차도 나는 안개속에 품어져있는 것 처럼 뿌옇다.
얼마전 의사선생님이 나에게 가장 최근에 무엇을 하면서 행복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없었다. 생각이 나질 않는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은 차근차근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나의 행복했던 시절을 되감기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라고 했다.
나의 높은 마음, 나의 품어온 옛꿈은 어디에 있을까. 과거 내가 행복했을 시절의 나는 무엇을 일상으로 삼으며 꿈을 만들어왔을까, 궁금해진다.
나의 낮은 몸은 오늘도 높은 마음을 찾으며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비록 높은 마음은 아직 가지지 못했더라도, 오늘의 베개 맡에 머리를 뉘이며 높은 마음을 한번 더 꿈꿔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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