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 따스한 포옹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다. 인간에게 외로움은 영원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외로움은 언제나 존재하는 거고, 그 외로움을 잠시 잊거나 아니면 다른 감정으로 외로움을 대체하는 것은 아주 잠깐의 순간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공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언제나 외로움을 느낀다. 지금 글을 이 쓰는 순간에도 외로움을 느끼고 있지만 다행히 지금은 월드컵 기간이라, 새벽 4시의 순간에도 온라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아주 잠시 외로움이 사라진다. 다같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다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이 끝나고 나면, 다시 한번 조용해지는 내 책상. 주변으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나의 공간. 이것이 나는 두렵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 고요함을 느끼는 것에 대해 고 을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싶다. 도파민이 분비되는 환희의 현장에서 순식간에 모든것이 사라져버리는 고요한 환경. 이 고요한...
9/4 오늘의 존재
오늘 한 아이가 있어줘서 고마워요 라는 말을 해주었고, 나는 그에 대한 답변으로 너도 존재해줘서 사랑해 라는 말을 했다. 존재해서 사랑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우리가 인간으로써 유일하게 모두가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존재하는 것 뿐이다. 누구나 이것만큼은 동일하게, 똑같은 기준으로, 존재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을 했다. 인간이 유일하게 다른 존재, 다른 생명체, 다른 동물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존재한다는 것은 심장이 뛰는 한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사람이 이 존재함을 하지 못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바로 죽음이다. 그리고 누구나 이 존재함을 못하는 순간은 온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자만이 할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음을 피할 수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존재함과 존재하지않음. 그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존재함은 심장이 뛰고 뇌가 살아있거나, 존...
11/14 이게 끝이아니라면
큰 트리거가 사라지고 난 뒤,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했고, 후회했다. 참을수 없는 죄책감이 올라온다. 최근엔 거의 술을 마시지않아 잘 누르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울컥울컥 올라오는 삶을 끝내고 싶은 의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잘 있다가도 불쑥 튀어나오는 후회와 아련한 심장. 술을 마실때에는 이 감정이 더욱 격해지는 것 뿐이었고, 그냥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아 격해지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기분. 모든 것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이 감정을 가진채 살아가고 싶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항상 그랬듯이 난 용기가 부족했고,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항상 다른 방법으로 이 감정을 극복해보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 털어놓자마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감정이 격해졌다. 내 스스로가 병신같다고 했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솔직한...
Abilifi.eht
12/14 따스한 포옹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다. 인간에게 외로움은 영원한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외로움은 언제나 존재하는 거고, 그 외로움을 잠시 잊거나 아니면 다른 감정으로 외로움을 대체하는 것은 아주 잠깐의 순간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공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언제나 외로움을 느낀다. 지금 글을 이 쓰는 순간에도 외로움을 느끼고 있지만 다행히 지금은 월드컵 기간이라, 새벽 4시의 순간에도 온라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아주 잠시 외로움이 사라진다. 다같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다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이 끝나고 나면, 다시 한번 조용해지는 내 책상. 주변으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나의 공간. 이것이 나는 두렵다.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 고요함을 느끼는 것에 대해 고 을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싶다. 도파민이 분비되는 환희의 현장에서 순식간에 모든것이 사라져버리는 고요한 환경. 이 고요한...
9/4 오늘의 존재
오늘 한 아이가 있어줘서 고마워요 라는 말을 해주었고, 나는 그에 대한 답변으로 너도 존재해줘서 사랑해 라는 말을 했다. 존재해서 사랑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우리가 인간으로써 유일하게 모두가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존재하는 것 뿐이다. 누구나 이것만큼은 동일하게, 똑같은 기준으로, 존재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을 했다. 인간이 유일하게 다른 존재, 다른 생명체, 다른 동물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존재한다는 것은 심장이 뛰는 한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사람이 이 존재함을 하지 못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바로 죽음이다. 그리고 누구나 이 존재함을 못하는 순간은 온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자만이 할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음을 피할 수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존재함과 존재하지않음. 그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존재함은 심장이 뛰고 뇌가 살아있거나, 존...
11/14 이게 끝이아니라면
큰 트리거가 사라지고 난 뒤,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했고, 후회했다. 참을수 없는 죄책감이 올라온다. 최근엔 거의 술을 마시지않아 잘 누르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울컥울컥 올라오는 삶을 끝내고 싶은 의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잘 있다가도 불쑥 튀어나오는 후회와 아련한 심장. 술을 마실때에는 이 감정이 더욱 격해지는 것 뿐이었고, 그냥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아 격해지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기분. 모든 것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이 감정을 가진채 살아가고 싶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항상 그랬듯이 난 용기가 부족했고,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항상 다른 방법으로 이 감정을 극복해보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 털어놓자마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감정이 격해졌다. 내 스스로가 병신같다고 했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솔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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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나서 publish 하는데 지갑 오류로 다시 쓰고있어서 처음의 감정을 되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4일전 일본에서 한국에 복귀한 뒤, 생각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한가할 줄 알았는데, 화요일 저녁에 복귀한 후의 바로 저녁에 미팅을 했고, 수많은 운동 일정과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생각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회사 동료가 집에만 있지 말라고 했는데, 오히려 집에만 있을 시간이 너무 없을 정도로 바빴다. 그러나 그렇다고 공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자주 공허함을 느낀다. 이 공허함을 타파하기 위해 나는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을 많이 가지기도 했다. 7월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일본에 있을때, 3일차 새벽에 Y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벽 5시쯤 되었는데, 평소라면 받지 않았을 테지만, 그날은 일본에 여행을 가있는 터라 노트북이 근처에 있었고, 소리가 켜져있어서 카카오톡의 보이스톡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래서 자던 와중에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Y가 지금 어디냐고 했고, 나는 일본이라고 했다. 그는 놀랐다. 그리고 약간의 잡담을 하다가, 한국이면 내일 나를 보러 오겠다고 말하려고 했다는 그의 말을 들었다. 반가웠다. 그의 관심아닌 관심. 그리고 그가 그의 친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술을 마신 것을 알았다. 그래도 나는 그의 관심이 좋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를 우리는 했다. 나는 기분좋게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복귀한 뒤, 나는 너른하게 그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나 몇일이 지나도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몇번이나 그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했지만, 답장이 아주 아주 뒤늦게 오거나, 오늘은 낮잠을 자야해서 올수 없다는 그의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아, 일본에서 받은 전화는 그의 술김에 생긴 아주 사소한 관심이라는 것을.
나는 태연하게 답변을 하고, 걸어가면서 그의 연락처를 차단했다가 풀었다. 그에게 티를 내지 않고 내가 그를 멀리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에게 적어도 먼저 연락하는 일을 없애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었다.
홧김에 였는지를 고민해본다면 전혀 홧김이 아니었다. 과거의 나라면 그에게 서운한 감정을 쏟아낸 뒤, 벽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혼자만의 감정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런데 항상 이럴때마다 선생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모든 결정을 유보하세요. 라는 의사선생님의 말. 선생님의 의도와는 다를 순 있지만, 나에게는 모든 행동을 홧김에 하지 마세요. 라는 기조로 자리잡았다. 꽤나 최근부터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Y와 연락할 때마다 그가 얼마나 답장을 느리게 하는지,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등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감정을 느낄때마다 애써 무언가 결정하지 않으려했다. 의사선생님의 말이 떠오르기도했고, 무언가 인정하기 싫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인정하기로 했다. 그를 보내줘야함을. 더이상 나와의 관계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인정하기로 했다. 아주 천천히.
그를 만났던 한달 전에 그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다. 나는 섣불리 그 꿈을 도왔다. 그 당시엔 그의 꿈을 이룬 다음이 궁금하기도 했고, 어떤 모습일지 보고싶었다. 그리고 나에겐 수많은 것들로 그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었으니 나는 홧김에 그를 도왔다. 그리고 그는 그 꿈을 이루고 살고 있다.
아주 약간 후회를 한다. 그는 그 꿈을 이룬 뒤, 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아주 작은 인간으로써의 애정도 사라져버린 듯 했다. 사라졌다기 보다는, 그의 마음에 공간이 더이상 여유롭지 않아 내가 차지할 공간이 없어진 것과 같았다.
나는 여전히 그때와 같이 아프고, 똑같은데, 꿈을 이룬 그는 더이상 그때의 그가 아니었다.
나는 3일전 밤에, 크게 아팠다. 아프다고 해봤자 그저 공황발작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가장 힘든 병과 같다. 약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아프다고, 힘들다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필요시 약을 급하게 꺼내먹고도 괜찮아 지지 않아서 한알을 더 먹었다.
아팠다. 눈물이 났다. 그런데 아프다고 말할 곳이 없었다. 예전에는 그에게 아프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더이상 말할 수가 없다. 그를 귀찮게 할까봐. 나의 친구들에게는 더더욱이 말할 수 없다. 친구들의 마음속에 괜한 씨앗을 심을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공황발작이 이래서 싫었다. 아픈데 아프다고 말할 수 없고, 그저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하는 고통의 시간.
그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길을 지나가는 아무개가 아니라 Y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를 이제 Y 그 자체에서 나의 주변인으로 변경하려 노력할 것 같다. 그에게 더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 나는 기대했다가 그 기대를 잃을 때 가장 아팠다. 실망이라는 감정이 나를 공황발작 상태에 빠지게 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아플텐데, 그는 꿈을 이룬 채 살 것이다. 그와 나는 여기서 이제 이별해야한다. 그에게 이별하자고 말하지는 않을 것 이다. 그에게는 이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롯이 그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가졌던 나만이 견뎌내야하는 이별.
나는 얼마전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의 견고한 세상을 깨는 건 너무 아프지만, 깨는 순간을 일으킨 사람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견고한 세상을 깨는 사람들은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다. 우리는 학창시절의 수학시간에 N이라는 변수에 대해서 배운다. N은 어떠한 숫자도 될 수 있는 그룹이다. 그는 나에게 원래 1이라는 대명사였다. 그는 내 세상을 많이 깼기 때문에, 나에게 그는 1이었다.
그런데 오늘부로 그를 다시 N으로 보내주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언제나 숫자 1이 아니라 N이 었던 것처럼, 우리는 과거의 서로를 위한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고통은 나만이 겪으면 된다.
최근 나는 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파괴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한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정의할 것이다. “남에게 기대하는 것, 그리고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
아니, 어쩌면 아닐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그가 내 세상을 깨주어 나는 그에게 많은 기대를 했지만, 이제 다시 아프고 싶지않다.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혼자로 살아가야한다. 아프면 견디기 어렵다. 매일 매일 약을 먹고 건강해지려 노력을 해야만 겨우 제자리 걸음을 할 수 있는 삶.
Y, 나의 세계를 많이 깨주어서 고마웠어. 그동안 나의 세상이 잠시 말랑말랑 해질뻔 했어. 근데 오늘은 인정하고 이제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으려고 해. 너의 꿈을 이루어 주어서 너무 행복했어.
앞으로도 더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라. 나도 이제 아프지 않고 더 건강해질거야.
남에게 기대하고 실망하는 나에게도, 오늘 이별의 인사를 한다.
(글을 쓰고 나서 publish 하는데 지갑 오류로 다시 쓰고있어서 처음의 감정을 되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4일전 일본에서 한국에 복귀한 뒤, 생각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한가할 줄 알았는데, 화요일 저녁에 복귀한 후의 바로 저녁에 미팅을 했고, 수많은 운동 일정과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생각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회사 동료가 집에만 있지 말라고 했는데, 오히려 집에만 있을 시간이 너무 없을 정도로 바빴다. 그러나 그렇다고 공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자주 공허함을 느낀다. 이 공허함을 타파하기 위해 나는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을 많이 가지기도 했다. 7월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일본에 있을때, 3일차 새벽에 Y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벽 5시쯤 되었는데, 평소라면 받지 않았을 테지만, 그날은 일본에 여행을 가있는 터라 노트북이 근처에 있었고, 소리가 켜져있어서 카카오톡의 보이스톡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래서 자던 와중에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Y가 지금 어디냐고 했고, 나는 일본이라고 했다. 그는 놀랐다. 그리고 약간의 잡담을 하다가, 한국이면 내일 나를 보러 오겠다고 말하려고 했다는 그의 말을 들었다. 반가웠다. 그의 관심아닌 관심. 그리고 그가 그의 친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술을 마신 것을 알았다. 그래도 나는 그의 관심이 좋았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를 우리는 했다. 나는 기분좋게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복귀한 뒤, 나는 너른하게 그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나 몇일이 지나도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몇번이나 그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했지만, 답장이 아주 아주 뒤늦게 오거나, 오늘은 낮잠을 자야해서 올수 없다는 그의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아, 일본에서 받은 전화는 그의 술김에 생긴 아주 사소한 관심이라는 것을.
나는 태연하게 답변을 하고, 걸어가면서 그의 연락처를 차단했다가 풀었다. 그에게 티를 내지 않고 내가 그를 멀리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에게 적어도 먼저 연락하는 일을 없애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었다.
홧김에 였는지를 고민해본다면 전혀 홧김이 아니었다. 과거의 나라면 그에게 서운한 감정을 쏟아낸 뒤, 벽을 바라보는 느낌으로 혼자만의 감정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런데 항상 이럴때마다 선생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모든 결정을 유보하세요. 라는 의사선생님의 말. 선생님의 의도와는 다를 순 있지만, 나에게는 모든 행동을 홧김에 하지 마세요. 라는 기조로 자리잡았다. 꽤나 최근부터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Y와 연락할 때마다 그가 얼마나 답장을 느리게 하는지,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등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감정을 느낄때마다 애써 무언가 결정하지 않으려했다. 의사선생님의 말이 떠오르기도했고, 무언가 인정하기 싫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인정하기로 했다. 그를 보내줘야함을. 더이상 나와의 관계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인정하기로 했다. 아주 천천히.
그를 만났던 한달 전에 그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다. 나는 섣불리 그 꿈을 도왔다. 그 당시엔 그의 꿈을 이룬 다음이 궁금하기도 했고, 어떤 모습일지 보고싶었다. 그리고 나에겐 수많은 것들로 그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었으니 나는 홧김에 그를 도왔다. 그리고 그는 그 꿈을 이루고 살고 있다.
아주 약간 후회를 한다. 그는 그 꿈을 이룬 뒤, 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아주 작은 인간으로써의 애정도 사라져버린 듯 했다. 사라졌다기 보다는, 그의 마음에 공간이 더이상 여유롭지 않아 내가 차지할 공간이 없어진 것과 같았다.
나는 여전히 그때와 같이 아프고, 똑같은데, 꿈을 이룬 그는 더이상 그때의 그가 아니었다.
나는 3일전 밤에, 크게 아팠다. 아프다고 해봤자 그저 공황발작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가장 힘든 병과 같다. 약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아프다고, 힘들다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필요시 약을 급하게 꺼내먹고도 괜찮아 지지 않아서 한알을 더 먹었다.
아팠다. 눈물이 났다. 그런데 아프다고 말할 곳이 없었다. 예전에는 그에게 아프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더이상 말할 수가 없다. 그를 귀찮게 할까봐. 나의 친구들에게는 더더욱이 말할 수 없다. 친구들의 마음속에 괜한 씨앗을 심을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공황발작이 이래서 싫었다. 아픈데 아프다고 말할 수 없고, 그저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하는 고통의 시간.
그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길을 지나가는 아무개가 아니라 Y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를 이제 Y 그 자체에서 나의 주변인으로 변경하려 노력할 것 같다. 그에게 더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 나는 기대했다가 그 기대를 잃을 때 가장 아팠다. 실망이라는 감정이 나를 공황발작 상태에 빠지게 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아플텐데, 그는 꿈을 이룬 채 살 것이다. 그와 나는 여기서 이제 이별해야한다. 그에게 이별하자고 말하지는 않을 것 이다. 그에게는 이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롯이 그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가졌던 나만이 견뎌내야하는 이별.
나는 얼마전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의 견고한 세상을 깨는 건 너무 아프지만, 깨는 순간을 일으킨 사람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견고한 세상을 깨는 사람들은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다. 우리는 학창시절의 수학시간에 N이라는 변수에 대해서 배운다. N은 어떠한 숫자도 될 수 있는 그룹이다. 그는 나에게 원래 1이라는 대명사였다. 그는 내 세상을 많이 깼기 때문에, 나에게 그는 1이었다.
그런데 오늘부로 그를 다시 N으로 보내주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언제나 숫자 1이 아니라 N이 었던 것처럼, 우리는 과거의 서로를 위한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고통은 나만이 겪으면 된다.
최근 나는 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파괴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한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정의할 것이다. “남에게 기대하는 것, 그리고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
아니, 어쩌면 아닐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그가 내 세상을 깨주어 나는 그에게 많은 기대를 했지만, 이제 다시 아프고 싶지않다.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혼자로 살아가야한다. 아프면 견디기 어렵다. 매일 매일 약을 먹고 건강해지려 노력을 해야만 겨우 제자리 걸음을 할 수 있는 삶.
Y, 나의 세계를 많이 깨주어서 고마웠어. 그동안 나의 세상이 잠시 말랑말랑 해질뻔 했어. 근데 오늘은 인정하고 이제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으려고 해. 너의 꿈을 이루어 주어서 너무 행복했어.
앞으로도 더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라. 나도 이제 아프지 않고 더 건강해질거야.
남에게 기대하고 실망하는 나에게도, 오늘 이별의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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