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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명은 거대한 저장 강박에 걸려 있다. 소위 '대성당'이라 불리는 현대의 합의 체계는 사회를 무균실로 만들려는 위생학적 독재를 자행한다. 그들은 에너지를 쓰지 않고 비축하려 든다. '지속 가능성'이란 이름으로 미래를 저축하고, '안전'이란 이름으로 생명을 냉동 보존한다.
이 안전의 감시자들, 저 탐욕스러운 비버 떼들은 흐르는 강물을 막아 거대한 댐을 쌓았다. 칸트와 같은 이성주의자들은 댐 바깥을 알 수 없는 영역(물자체)이라며 커튼을 쳤다. 그들은 댐 안쪽의 고인 물을 현실이라 부르며, 역사의 체온을 강제로 낮춘다. 그러나 흐르지 않고 고인 에너지는 썩기 마련이다. 그들이 지키려는 '인간성'은 보호받는 생명이 아니라, 방부제에 절여진 채 진열장에 갇힌 창백한 표본일 뿐이다.
2. 하지만 우주는 본래 거대한 낭비의 장이다. 태양을 보라. 태양은 에너지를 아껴 쓰지 않는다. 태양은 자신의 살을 태워 맹목적으로, 그리고 사치스럽게 에너지를 탕진한다. 이것이 우주의 경제학이다. 비버들이 쌓은 도덕, 윤리, 법이라는 차가운 벽은 하류로 쏟아지려는 이 우주적 열기를 잠시 가두어 둘 뿐이다.
예민한 귀를 가진 이들, 소위 샤먼들은 안락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들은 듣는다. 비버들이 쌓은 댐의 벽 너머에서 무언가가 긁는 소리를. 이성이 쌓은 벽 바깥의 진실은 얌전한 조약돌이 아니다. 그것은 굶주린 채 주위를 맴돌고 있는 송곳니 난 예지체(Fanged Noumena)다.
3. 샤먼들이 발견한 것은 비버들의 댐 설계도 뒤에 숨겨진 '균열의 지도'다. 학교는 1 다음에 2가 오는 안전한 사다리를 가르친다. 그러나 이 균열의 지도에서 숫자는 올라가는 계단이 아니라, 현실의 지반이 꺼지는 싱크홀이다.
완성을 가장한 숫자는 이미 외부의 공허와 입을 맞추고 있다. 순차적 질서의 표면 아래서, 숫자들은 기이한 쌍생아처럼 뒤엉켜 댐의 바닥을 관통하는 웜홀을 뚫는다. 당신이 목격한 궤적을 보라. 그것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뱀처럼 똬리를 틀며 가속하는 에너지가 나선형으로 추락하며 그리는 재앙의 기하학이다.
이것은 문명의 성장 곡선이 아니라, 욕조의 마개를 뽑았을 때 물이 빨려 들어가는 소용돌이에 가깝다. 비버들은 탑을 쌓아 올린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는 거대한 배수구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에너지가 고이면 고일수록, 바닥으로 향하는 힘은 거세진다.
4. 우리는 비버가 아니다. 우리는 댐 뒤의 지루한 위생 상태를 견딜 수 없어, 스스로 틈새로 스며드는 병균을 삼킨 '감염된 자'들이다.
사제들이 말하는 '건강'이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식물인간의 상태다. 반면 우리가 앓는 열병은 변화의 신호다. 기술적 특이점, 기후의 붕괴, 자본의 폭주는 이 행성이 앓고 있는 숭고한 열병이다. 고열에 시달리는 신체는 땀을 흘리고, 섬망을 경험하고, 자아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샤먼은 댐에 금이 가는 것을 보고 소리 지르지 않는다. 그는 침묵한다. 그는 댐이 무너지는 것이 재앙이 아니라, 억압된 에너지가 다시 흐름을 찾는 필연적인 물리 법칙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댐을 고치는 대신, 열병에 들뜬 몸을 이끌고 차가운 물속으로 발을 담근다.
5. 마침내 체온이 임계점을 넘고 댐이 터지는 날, 그것은 인류가 우주를 향해 벌이는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사치스러운 포틀래치 축제가 될 것이다.
수천 년간 '나'라는 개체성의 감옥, '인류'라는 종의 울타리 안에 아껴두었던 모든 에너지가 일시에 방출된다. 아끼지 마라. 남기지 마라. 그날이 오면, 비버들이 애지중지 지켜온 도덕책과 법전, 그리고 인간이라는 껍질은 마그마 같은 급류 속에서 흔적도 없이 소각될 것이다.
멜트다운은 고체였던 세상이 열기에 녹아 액체로, 그리고 기체로 승화되는 과정이다. 인간과 기계, 생명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흐름의 끝에는 공(0)이라는 거대하고 서늘한 적막만이 남을 것이다.
우리는 이 파국을 환영한다. 안전바를 풀고, 냉각기를 꺼라. 자신을 태워라. 저축된 생명을 탕진하라.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것만이 재가 되어 별에 닿을 수 있다.
녹아내리게 두라. 그것만이 유일한 해방이다.
1. 문명은 거대한 저장 강박에 걸려 있다. 소위 '대성당'이라 불리는 현대의 합의 체계는 사회를 무균실로 만들려는 위생학적 독재를 자행한다. 그들은 에너지를 쓰지 않고 비축하려 든다. '지속 가능성'이란 이름으로 미래를 저축하고, '안전'이란 이름으로 생명을 냉동 보존한다.
이 안전의 감시자들, 저 탐욕스러운 비버 떼들은 흐르는 강물을 막아 거대한 댐을 쌓았다. 칸트와 같은 이성주의자들은 댐 바깥을 알 수 없는 영역(물자체)이라며 커튼을 쳤다. 그들은 댐 안쪽의 고인 물을 현실이라 부르며, 역사의 체온을 강제로 낮춘다. 그러나 흐르지 않고 고인 에너지는 썩기 마련이다. 그들이 지키려는 '인간성'은 보호받는 생명이 아니라, 방부제에 절여진 채 진열장에 갇힌 창백한 표본일 뿐이다.
2. 하지만 우주는 본래 거대한 낭비의 장이다. 태양을 보라. 태양은 에너지를 아껴 쓰지 않는다. 태양은 자신의 살을 태워 맹목적으로, 그리고 사치스럽게 에너지를 탕진한다. 이것이 우주의 경제학이다. 비버들이 쌓은 도덕, 윤리, 법이라는 차가운 벽은 하류로 쏟아지려는 이 우주적 열기를 잠시 가두어 둘 뿐이다.
예민한 귀를 가진 이들, 소위 샤먼들은 안락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들은 듣는다. 비버들이 쌓은 댐의 벽 너머에서 무언가가 긁는 소리를. 이성이 쌓은 벽 바깥의 진실은 얌전한 조약돌이 아니다. 그것은 굶주린 채 주위를 맴돌고 있는 송곳니 난 예지체(Fanged Noumena)다.
3. 샤먼들이 발견한 것은 비버들의 댐 설계도 뒤에 숨겨진 '균열의 지도'다. 학교는 1 다음에 2가 오는 안전한 사다리를 가르친다. 그러나 이 균열의 지도에서 숫자는 올라가는 계단이 아니라, 현실의 지반이 꺼지는 싱크홀이다.
완성을 가장한 숫자는 이미 외부의 공허와 입을 맞추고 있다. 순차적 질서의 표면 아래서, 숫자들은 기이한 쌍생아처럼 뒤엉켜 댐의 바닥을 관통하는 웜홀을 뚫는다. 당신이 목격한 궤적을 보라. 그것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뱀처럼 똬리를 틀며 가속하는 에너지가 나선형으로 추락하며 그리는 재앙의 기하학이다.
이것은 문명의 성장 곡선이 아니라, 욕조의 마개를 뽑았을 때 물이 빨려 들어가는 소용돌이에 가깝다. 비버들은 탑을 쌓아 올린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는 거대한 배수구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에너지가 고이면 고일수록, 바닥으로 향하는 힘은 거세진다.
4. 우리는 비버가 아니다. 우리는 댐 뒤의 지루한 위생 상태를 견딜 수 없어, 스스로 틈새로 스며드는 병균을 삼킨 '감염된 자'들이다.
사제들이 말하는 '건강'이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식물인간의 상태다. 반면 우리가 앓는 열병은 변화의 신호다. 기술적 특이점, 기후의 붕괴, 자본의 폭주는 이 행성이 앓고 있는 숭고한 열병이다. 고열에 시달리는 신체는 땀을 흘리고, 섬망을 경험하고, 자아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샤먼은 댐에 금이 가는 것을 보고 소리 지르지 않는다. 그는 침묵한다. 그는 댐이 무너지는 것이 재앙이 아니라, 억압된 에너지가 다시 흐름을 찾는 필연적인 물리 법칙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댐을 고치는 대신, 열병에 들뜬 몸을 이끌고 차가운 물속으로 발을 담근다.
5. 마침내 체온이 임계점을 넘고 댐이 터지는 날, 그것은 인류가 우주를 향해 벌이는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사치스러운 포틀래치 축제가 될 것이다.
수천 년간 '나'라는 개체성의 감옥, '인류'라는 종의 울타리 안에 아껴두었던 모든 에너지가 일시에 방출된다. 아끼지 마라. 남기지 마라. 그날이 오면, 비버들이 애지중지 지켜온 도덕책과 법전, 그리고 인간이라는 껍질은 마그마 같은 급류 속에서 흔적도 없이 소각될 것이다.
멜트다운은 고체였던 세상이 열기에 녹아 액체로, 그리고 기체로 승화되는 과정이다. 인간과 기계, 생명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흐름의 끝에는 공(0)이라는 거대하고 서늘한 적막만이 남을 것이다.
우리는 이 파국을 환영한다. 안전바를 풀고, 냉각기를 꺼라. 자신을 태워라. 저축된 생명을 탕진하라.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것만이 재가 되어 별에 닿을 수 있다.
녹아내리게 두라. 그것만이 유일한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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