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신다. 그 순간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커피가 어떤 여정을 거쳐 내 앞에 왔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누군가 땀 흘리며 수확한 초록 열매가 긴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은, 솔직히 별로 중요하게 여겨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속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예를 들어 모래. 최근 읽은 에드 콘웨이의 『물질의 세계』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흔한 모래가 반도체의 핵심 원료가 되기까지 얼마나 긴 여정과 정교한 가공을 거치는지 전혀 몰랐다. 매일 마이애미 비치에서 보던 그 모래가 지구를 몇 바퀴 돌며 운반되고 다듬어져, 오늘날 가장 중요한 산업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못했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상대의 겉모습이나 몇 분의 대화, SNS 사진 몇 장으로 쉽게 판단하곤 한다. 그것도 강한 확신과 함께. 하지만 그 판단은 얼마나 정확할까?
지하철에서 우는 아이를 말리지 않는 엄마가 무례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엄마가 방금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아이와 지하철에 올랐다면?
부모와 아이를 돌보던 나니가 웃으며 함께하는 점심은 겉보기에는 화기애애보이지만, 사실은 출신국가 탓에 비자를 받지 못해 갑작스레 미국을 떠나야 하기에 가지는 마지막 이별의 자리일 수도 있다.
문신 가득한 강한 외모의 남자가 사실은 집에서 얼그레이 쿠키 굽기를 좋아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예상할 수 있을까.
투자자이자 경영자로서 나는 늘 제한된 시간과 정보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경험이 쌓일수록 결정을 빠르게 내리는 법은 익혔지만, 동시에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도 커졌다. 절대적인 확신 대신, 가정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되묻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 완벽한 결정은 불가능하더라도, 이 과정이 결정의 질을 높여 준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더 크게 보면, 인생의 원리도 다르지 않다. 절대적인 고통도 없고, 영원한 성공도 없다. 잘 풀릴 때는 언제든 가정이 틀릴 수 있음을 기억하며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고, 힘든 순간엔 그것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남들의 비난과 칭찬 역시 편협한 맥락과 불완전한 가정 위에서 나온 결과일 뿐이다. 받아들이되, 내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교만하게 만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듯 남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내 삶을 조종하게 될 것이다
판단은 쉽지 않다. 하지만 숨은 가정을 호기심으로 찾아내고 확인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수많은 비즈니스 결정 속에서도 더 나은 질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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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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