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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재즈를 듣는다. 밀당하듯, 실크가 몸을 감싸듯 휘감는 리듬. 무심한 듯 흘러가다 어느 순간 잽싸게 아랫배의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치명적 매력 때문에. 뉴욕에 갈 때마다 꼭 들르는 MoMA 4층, Van Gogh의 Starry Night처럼 — 고요한 어둠 속에 비친 달이라는 잔잔함안에 마음을 뒤흔드는 불안과 소용돌이를 휘갈긴 강렬한 붓터치. 재즈도 그런 느낌 아닐까.
재즈는 어떤 규칙 속에서 표현되는 자유 같다. 악보라는 틀, 그 안의 음표와 박자는 마치 넓게 펼쳐진 마이애미 바다 위에 꽂힌 작은 깃발에 불과하다. 생명을 위협하지 않을 최소한의 경계. 그 안에서, 혹은 잠시 그걸 넘었다 다시 들어왔다를 반복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유영하는 생명체처럼. 그날의 기분, 날씨, 파도, 함께 유영하는 음들, 그리고 그걸 연주하는 사람들과의 교류의 파동에 따라 매 순간 새롭게 연주되는 재즈.
공기의 떨림, 눈빛, 미소로 대화하는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트럼펫 사이를 오가며 빠져들었다 나오는 그 시간 속 — 나를 현실로 붙잡아두는 건 오직 위스키 잔 속 천천히 녹아내리는 얼음큐브가 알려주는 시간의 흐름 뿐이다.

자유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어쩌면 바로 '질서'가 있기 때문 아닐까. 캔버스 안에서의 자유, 피튀기는 엄격함이 존재하는 미슐랭 스타 주방 속에서 피어나는 창의성,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완벽’에의 승부속에서 찾아야하는 F1 드라이버의 자기만의 리듬, 수많은 프로토콜과 '하지 말아야 할' 규칙들 속에서 저마다 투자 철학을 찾아야 하는 투자회사. 자유가 손짓한다. 사이렌들이 오디세우스의 배사람들을 유혹하듯.
일상에서도 — 기다려지는 금요일 퇴근, 부모에게 대드는 사춘기 소년, 수업시간을 째고 거리에 나아가 자유를 외치고픈 학생들, 그 모든 갈망과 열정의 배경에는 언제나 '질서'라는 판이 깔려있다.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동료가 늘어날수록 이 '질서와 자유' 사이의 황금비율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우리가 재즈같이 자유를 줄 수는 없어도, 각자의 자유가 건강한 창의성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그 무대를 설계하고 계속해서 조율하는 노력을 계속 해가야할 것이다.
집중이 필요한 주중에 듣는 클래식, binaural 비트, 앰비언트, 알파 주파음 음악들이 나를 안으로 모으고 정리해주는 반면, 주말에 꺼내듣는 재즈는 나를 하얀 캔버스 위에 마음껏 물감을 튀기고, 흘리고, 그리며 모니터 밖 세상의 것들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해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홋카이도 Royce 초콜렛만큼이나 달콤한 자유를 준다.

Stev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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