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H 브리치의 《Story of Art》 를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1890년대 한 비평가가 최신의 미술사를 쓰고 있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당시 역사를 만들어가던 세 인물들의 중요성을 전혀 몰랐을 것이라는 대목이다.
남프랑스에 살던 중년의 ‘미친’ 네덜란드인
전람회에 그림 보내기를 오래전에 그만두고 혼자 생계를 꾸려가던 신사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어 남태평양으로 떠나버린 전직 주식 중개인
바로 반 고흐, 세잔, 그리고 고갱이다.
투자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언제나 최신 유행을 궁금해하고, 그것을 가장 중요한 사실처럼 받아들여 앞다투어 보도한다. 프로 투자자들조차 그 흐름을 추천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모두가 열광하는 대상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유행이 끝날 때 많은 이들에게 손실을 남긴다는 사실을. 다만 그 깨달음은 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찾아온다.
사람들은 남의 승인을 갈망하고, 비난이나 평가에 취약하다. 그래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쉽게 동의하며, 관심받지 못하는 길을 걷는 것을 두려워한다. 인간의 본성이다.
나는 문득, 지금은 누구나 아는 세계적 투자자들이 언제 회사를 세웠고 언제 유명해졌는지가 궁금해 ChatGPT에 물어보았다.
워렌 버핏: 1956년 회사 창립 → 1980년대 이후 Berkshire Hathaway로 세계적 명성
레이 달리오: 1975년 창립 → 2000년대,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때 명성
빌 애크먼: 1992년 창립 → 2010년대 activist 투자자로 대중적 명성
조지 소로스: 1970년 창립 → 1992년 파운드화 공매도로 명성
과연, 이들이 회사를 창립했을 당시, 어느 비평가가 훗날 그들이 전설적인 투자자가 될 것을 예상했겠는가. 그들이 때로는 유행을 이해하고 활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들의 명성은 단순히 모두가 이야기하며 따르던 시대의 유행을 좇아 얻은 것은 아니였을 것이다.
본인들을 포함해, 이들이 명성을 얻게 될 순간을 미리 알 수 있었던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유행보다 자기만의 철학과 방식을 꾸준히 다듬으며, 오래 버틸 수 있는 페이스를 지키지 않았을까. 여기에 타이밍과 운이 더해지면서 그 운명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유행을 좇아 단기간 큰 성공을 노리는 삶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 고흐, 세잔, 고갱처럼 ‘역사에 남을 임팩트’를 남길 날을 꿈꾸며 자신의 분야에 몸과 영혼을 갈아 놓고 있다면, 지금 눈앞의 것이 유행인지 아닌지를 가려낼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유행은 사라지지만, 본질은 남을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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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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